정유정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침대에 늘어져 그루밍을 하고 있고 지나가는 아이는 뭐가 그리 짜증 나는지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떼를 쓰고 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도로를 달리며 상식 없이 끼어드는 차를 향에 씩씩거리고 있고 음식물 쓰레기의 초파리는 최선을 다해 오늘도 집안 곳곳을 날아다닌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보람찬 행복을 맞이할 수 있을까. 되강오리가 있는 반달늪 쪽으로 검은 실루엣만 보이는 우비 쓴 무언가가 지나간다. 분명 눈을 마주친 것 같지만 얼굴은 없다. 파란 장화만 보일 뿐이다. 오싹한 기분에 이불속으로 몸을 숨겨보지만 그날 밤도 악몽을 꾼다. 검은 우비 속 무언가도 되강오리에 대한 책임을 지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을까.
오늘도 엄마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나는 의젓해야 한다.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이모에게 전화한 것을 들키면 안 된다. 새아빠에겐 이모에게 전화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해야겠다. 나도 내 나름의 전략을 생각한 끝에 엄마에게 들키지 않을 최선의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모르겠지? 모를 거야.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너무 엄격하시다.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 난 오늘도 말을 잘 들을 것이다. 고분고분, 예의 바르게. 내 감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오랜만에 몰입감 있는 책을 만나보았다. 되강오리, 지유, 재인, 유나, 진우, 준영, 민영... 내용 자체의 분위기가 음침하고 썰렁하긴 하지만 너무 달콤해서 기억에 남는 문장도 있다.
"이모, 오늘 바쁘세요?"
...
"아니야, 토요일이잖아. 할 일 하나도 없어. 너어어무 심심하고 졸려서 혼자 혀 깨물기 놀이하는 중이야."
조그맣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그 수줍은 웃음소리에 그녀는 단번에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