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가즈코
사촌언니는 나의 베프이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만나면 편하고 즐겁다. 애써서 반응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할 말을 일부러 생각해 내지 않아도 말이 나온다. 그런 언니와 또 만나 개인 서점에 들어갔다. ‘언니! 서로 책 골라서 선물해줄래?’ 내가 물었다. 언니도 동의했다. 언니는 요즘 연애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날의 고민이었다. 나는 해결책은 아니지만 바람을 말했다. ‘언니가 어떤 기준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나려고 하지 말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랑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런 나에게 들어온 책이 있다. <산책과 연애>였다. 왜인지 서정적인 제목과 표지에 연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녹여져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사실 두 권이 있었는데 다른 한 권은 <땅콩 일기>였다.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는 언니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언니에게 더 주고 싶은 책은 <산책과 연애>였다고 말하니 언니는 그럼 그 책으로 하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나는 언니와 ‘편한 소파가 넓게 있는’ 카페를 찾아 나섰다. 도착해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따뜻한 공기와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데 점심을 먹고 와서 그런지 너무 잠이 왔다. 자다가 또 읽었다. 이렇게 하루 만에 완독을 한 적은 처음인데 책을 읽게 만드는 분위기와 같이 읽는 사람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에는 도망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힘든 감정을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고 덮어두면, 나중엔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도망은 현재의 나를 건강한 방법으로 보살펴 주는 것.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냥’이라는 말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왜 카톡 안 봐?’라고 물어올 때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이다. 즉,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이면엔 너와의 대화가 불편하다거나, 지금 기분으로 대화하면 너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할까 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내용을 통해 솔직한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과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이 나와있다.
연애에 대한 진지하고 사색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은 <산책과 연애>를 선물한 나는, 언니가 그 책으로 연애에 대해 한 걸음 쉬며 위로받기를 바랐다. 언니는 읽는 내내 ‘굉장히 특이한 책이야..!’를 연발했고 나는 약간의 불안과 걱정으로 ‘그래서 재미없어..?’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그런 건 아니고, 굉장히 특이해!’였다. 내가 읽던 책을 다 읽고 언니의 책을 잠깐 읽어봤는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연애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글은 결코 아니었고, 진짜 현실판 연애, 로망과 환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애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금 언니와 연락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해줘서 고마워요. ~해서 감동이에요. ~해서 감사해요. ~해서 미안해요.라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가 좋아 싫어? 물어보니 싫은건 아닌데 뭔가 답답하다고 한다. 언니에게 그에게서 또 카톡이 왔다. 이번엔 저 네 개 중에 무슨 말일까 속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언니가 조심스럽고 잘 보이고 싶은 거겠지~ 혹시 계속 호감을 비치는데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준 <산책과 연애> 그 사람한테 줘ㅋㅋㅋ” 위로를 바라며 선물한 책이 거절을 의미하는 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하튼 언니와의 만남은 일상의 쉼표 역할을 한다. 다음엔 진짜 위로되는 책을 선물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