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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TOURE A DAY

입사 포기

씁쓸함의 기억

by DAWN

여느 때처럼 오전 10시에 느긋하게 일어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가 공개해 놓은 자기소개서를 보고 면접제의가 온 것이다. 비몽사몽 잠긴 목소리로 받았는데 혹시 면접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네네 가능합니다. 1차 면접은 차장님 두 분과 1시간 정도 봤다. 회사는 압구정동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멀리서 왔다고 내려가서 후회하지 말고 모르는 거,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고 가라고 하셨다. 진짜 모르는 거, 궁금한 거 다 물어보았다. 면접이 끝나갈 때에는 혹시 다른 회사 면접도 있냐고 물어보셨다. 솔직하게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합격여부는 메일로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일정을 고려해서 2차 면접 일정을 잡았다. 이틀 후 인가 면접 합격 안내를 받고 며칠 후 대표와의 면접을 보러 또다시 서울로 갔다. 이번엔 한 시간 넘게 대표와의 면접을 봤다. 그날만 해도 3명인가가 더 면접을 보러 온다고 그랬다. 내가 그날의 첫 번째 면접자였나 보다. 건물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걷고 있는데 나처럼 정장을 쫙 빼입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보였다. 방금 내가 나온 건물로 향하는 것일까.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잘 보되 나보다는 못 봤으면.


또 며칠이 지났다. 최종합격 메일을 받았다. 입사 필요 서류를 다 보내주고 메일상에서 궁금한 내용들도 다시 한번 물어보며 최종 확정을 지었다. 이젠 서울에서 지낼 집을 알아보아야 한다. 매물을 확인하고 부동산과 약속도 잡았다. 오빠가 서울까지 같이 가주기로 했다. 전세 계약 사기 유튜브도 챙겨본다. 특약은 뭐를 넣어라. 입주확정일자와 뭐는 어떻게 해라..


근데 내가 이 회사에서 시작하는 게 정말 잘하는 선택일까. 너무 고민되었다. 걸리는 건 잡플래닛 후기와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연봉. 일주일 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다시 이메일을 썼다. 입사를 포기하기로. 부동산 사장님들께도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차례차례 연락드렸다.


집안 사정과 겹쳐 못 가게 된 것도 있었다. 아빠는 괴로우면 술을 먹는데 취해서 들어온 채로 나에게 울면서 말했다. 미안하다고. 자는 척하면서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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