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3권을 끝마칠 때까지 긴 시간이었다. 1, 2권을 읽을 때 생겼던 안나에 대한 배신감, 적대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3권의 후반부에 들어서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삶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생활 방식, 종교, 가족, 농사, 사랑 같은.
안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나의 독백을 읽을 땐 슬로모션처럼 시간이 흘러갔지만 책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다음 줄을 읽고 있었다. 도망친 곳에 파랑새는 없다는 것을 안나는 결코 몰랐던 걸까. 책을 다 읽기 전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는데 안나의 자살 장면과 사교모임 장면을 묘사해 놓은 부분은 영화가 아닌 연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여자 남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정치, 종교, 농사 등 삶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불꽃같은 순간의 유혹보다는 잔잔하고 본인의 삶에 충실한 삶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삶을 대하는 레빈의 태도는 겸손하고 진심이었다.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놔두고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먼 훗날 나를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만들어줄 것 같다.
대충 어떤 내용의 줄거리인지조차 모르고 시작했던 안나 카레니나는 대단한 깨달음을 주기보단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미리 보기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정돈된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