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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담

사랑

by DAWN

하루종일 기를 쏟아 일을 하고 돌아와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나니 그래도 로봇의 견해로는 아직도 내가 전지전능하고 신성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보일까 의문이다.


연구소로 들어간 로봇이 소리 소문 없이 몇십 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의 피부는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었는데, 세밀한 붓으로 칠한 듯 농담의 차이가 있었다. 살짝 몸을 덮은 피부에는 아름다운 내부 윤곽이 아주 희미하게 비쳤다. 몸은 정교한 모공과 눈에 띄지 않을 만치 작고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었고, 미학적인 곡선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사랑이었다. 유기체의 완벽함에 매료된 로봇의 사랑. 이 문단을 읽을 땐 눈에 슬로모션이 걸린 듯 한 자 한 자가 또렷하게 뇌리에 박혔다. 사람의 형상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미학적인 곡선'을 되새겨보며 졸린 눈으로 손 끝 마디마디를 살펴본다. 부모가 아이를 보는 마음이 저런 마음일까. 1, 2, 3부작을 넘어가면서 글의 분위기가 확확 바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이 작품을 처음 집필한 1편은 작가가 20대일 때이고, 2편을 집필할 때는 작가가 30대인 05년 즈음이고 3편을 집필할 때에는 작가가 40대에 들어선 23년도라고 한다. 사람의 세월이 글에 녹여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진리, 신성, 완벽, 전지전능, 미덕의 중심, 최고의 가치, 절대적인 존재, 신... 인간을 바라보는 로봇의 관점이긴 하나 평어를 사용하던 일상에서 저런 단어들을 만난다는 것이 신선했다. 로봇의 값이 디폴트인 환경에서 태어난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손끝에 흐르는 미학적인 곡선들 끝으로 까시래기들이 걸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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