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_신형철
아침 인사가 어느샌가부터 짧아졌다. 연락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그동안 섭섭하다는 말에 지쳤던 것이다. 자신은 연락이 와있으면 볼 때마다 다 답장하려 하고, 내가 물어보면 자신이 답 할 때도, 자신이 물어보면 내가 답할 때도 있는 건데 왜 항상 나만 섭섭한 건지 본인도 답답하다고 한다. 너도 마음이 안 풀리면 시간 좀 가질까?라고 물어본다.
난 벌써부터 미래를 상상해 본다. 우리가 헤어지게 될까? 다시는 못 보게 되는 걸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미 지친 그를 붙잡아 타이르는 것은 나도 감당이 안 됐기에 시간이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틀 뒤가 시험인데, 공부에 집중이 안 됐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과 그를 다시 못 보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찌어찌 공부를 끝내고 잘 시간이 되어 눈을 감았는데,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그간 섭섭하다고 했던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게 섭섭했던 걸까 고민해 봤다. 이제 알겠다. 내가 섭섭했던 건 그가 답장이 느리게 와서도, 선톡이 안 와서도, 하루에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처음과 달라졌던 그의 말투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내 그에게 섭섭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섭섭한 건지는 말을 안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섭섭하다는 나의 말에 지쳐 점점 말투가 변했던 것이었다.
새벽이 될수록 또렷해지는 정신과 그를 다시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타지에 혼자 올라와 있는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서울이라는 숙주에 꾸역꾸역 붙어있는 기생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벽 6시쯤에 엄마가 일어나니까,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엄마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잠결인 '여보세요'가 들려왔다. 나는 '엄마'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전화가 잘 안 터질 때가 많다. 그날이 그랬다. 엄마의 '여보세요'가 세 번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그와 헤어질 수도 있는 마당에 엄마와의 전화까지 끊기게 되니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새벽 6시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시간을 갖자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더 비겁하고 상처되는 말이다. 헤어지자고 하면 되돌아갈 수 없으나 시간을 갖자는 말은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고 자기 손에는 피 묻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만 피 말리게 된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들지 못했다. 불만이 있었으면 말을 해야 대화를 하든 풀든 했을 텐데 왜 그동안 말을 안 했을까라는 불만과, 그동안 내가 못 해준 것만 생각나 미안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와의 시간을 갖게 된 지 이틀, 삼일이 되던 때에 인생의 역사를 모두 읽었다. 신형철은 알렉산더 포프의 장시 「비평론」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금 아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깊이 마시지 않을 거라면 피에리아의 샘물을 맛보지 말라." 알렉산더 포프의 장시 「비평론」의 215~216행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위험한 것은 그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아는 삶은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안다. 이어지는 대목이 이렇다.
"얕은 한 모금은 뇌를 취하게 만들지만 많이 마시면 다시 명철해지리라."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이젠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에게 불만이 있었던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저 구절을 읽고 내가 얼마나 그에 대해 안일했는지, 그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으로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나로부터 그를 보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