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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ul 24. 2017

祝!蹴! 양양고속도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지난 토요일 오후에 주문진에 가게 되었다.

주문진 항에서 하루를 잘 보내고 일요일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주문진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전 8시, 그런데 내비가 거리상으로 가까운 영동고속도로를 가르키지 않고 자꾸 북쪽으로 가라고 한다. 새로 생긴 양양고속도로(동서고속도로)도 구경할겸 잘 됐다 싶어 내비를 따라갔다. 서울 목적지 도착 예정시간이 10시 30분이니 2시가 30분이면 양양에서 서울 성북동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주말이면 막힌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침 일찍이어서 막히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고 양양고속도로를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도착 예정시간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고 차가 서행하기 시작하면서 졸음이 몰려와 졸음쉼터에서 쉬게 되고 새로운 고속도로에 생긴 최신 시설의 내린천 휴게소에서 아침도 먹고 내린천 휴게소의 상하행 주차장 위치가 달라 헤매기도 하는 사이 도착시간이 자꾸 늘어지더니 결국 오후 2시경에야 서울 집에 도착하게 됐다. 출발해서 6시간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밥먹고 쉬는 시간 등을 빼더라도 운전 만 4시간 이상은 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게 한 나의 첫 양양고속도로 운행 경험 때문에 '祝'을 '蹴'으로 쓴 것은 아니다.


양양고속도로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건설된 도로다. 가장 최근에 건설된 고속도로로 자연 친화적인 건설을 위해서 도로의 73%를 터널과 교량으로 구성해 터널만 35개에 43.5키로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특히 양양과 인제를 잇는 인제터널은 무려 11키로나 되어 우리나라 최장 터널이라고 한다. 최신 기술을 적용해서인지 바닥면의 감촉도 좋았고 터널 조명도 밝아 긴 터널이 계속 되는데도 불구하고 크게 지루하지 않았고, 잦은 간격으로 큼직한 비상구 사람모양의 대피소 안내그림으로 긴 터널을 운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운전자의 불안도 최소화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새고속도로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을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억수같은 비로 인해 그런 부분도 있었겠지만 양양에서 춘천까지 오는 줄곧 터널 속에 갇혀 왔다는 느낌만 갖게 되었다. 운행하면서 마주할 것으로 기대했던 절경들은 심한 안개와 비로 인해 터널 바깥에 나왔을때도 앞차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 였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시멘트 통로를 지나왔다는 느낌 만 남은 것이다. 아마 비가 오지 않았어도 그 느낌은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연히 과거 국도를 구비 구비 운행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경관과 운치는 속도를 선택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을 실감하게 해준 것이다.


이처럼 전국에 거미줄과 같은 교통망이 갖춰질수록 우리들의 삶은 더 빨리 돌아가게 된다. 그 만큼 더 편리해지고 그 만큼 더 빠른 경험을 더 자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빨라지고 있는 속도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동안 그 속도만큼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는 종종 지나치게 됨을 알게 된다. 양양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과 양양의 빨라지는 만남 이면에는 새로운 길로 인해 보지 못하게 되는 어떤 지역, 어떤 아름다움이 속도 속에서 묻혀버렸음을 알게 된다. 또한 목표지에서의 깊은 만남은 속도가 벌어준 시간에 비해 오히려 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랜드마크 만 급히 들런 후 다시 급히 돌아오는 식이다. 마치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처음과 결과만 강조되고 중간의 과정들은 생략되고 무시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다음 장면은 우리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늘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아웃풋이 뭐냐고?"


회사에서는 과정은 별로 중요치 않다. 누가 그 일을 처음 시작했고 그 끝인 결과만 갖고 따지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 과정을 묻기 시작하면 모든 변명(?)을 들어줘야 하고 그 만큼 평가하는 절차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과정상의 실패가 쌓여서 오늘날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존경받는 회사 중에는 실패를 용인하고 과정을 중시하는 회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회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결과 만 묻게되고 그 결과에 따라 성과가 좋지 않은 사람은 조직에서 내보내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하다보니 성장과 혁신이 멈춘 조직에서는 결과를 부풀리기 위해 온갖 편법과 조작이 난무한다. 최대한 조직을 속이다가 발각되기 직전에 조직을 떠나버리면 다행이지만, 곪아 터지기 직전의 공을 넘겨받은 사람은 책임을 지고 조직을 떠나게 된다. 속도만을 추구하는 조직 속에서 용도가 폐기되어 매몰되는 셈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확산되면서 더욱 더 빠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그 빨라지는 속도 속에서 과정은 점점 더 무시되고 생략되어진다. 그 빠른 세상을 만든 주인공인 사람들이 그 속도에 의해 희생되는 슬픈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속도로 시간을 단축시켜 준 양양고속도로를 통과하면서 갑자기 뭔가 잃어버린 느낌이 결과 중심의 세상을 생각하게 했다. 유영만 교수의 말처럼 속도경쟁으로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충실함을 추구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밀도경쟁을 해야한다. 그래서 속도경쟁에 처지는 사람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한 과정을 인정하면서 보듬으며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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