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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Aug 10. 2017

굴욕적인 10분강의

비움이 중요하지만, 채움 다음의 일


2박 3일 동안, 강사들을 육성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한 마디로 강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한 것이다. 조직에 소속되어 강의를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프리랜서이거나 1인기업 강사들이었다. 3일 동안, 전국에서 여러 분야의 주제로 강의를 하는 분들이 함께 모여 많은 얘기들을 나누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이 모임에서 배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꼭 하나를 말한다면 비움의 미학을 다시 깨닫게 된 일이다.

모든 참여자들은 모임에서 배운 강의기법을 활용해서 10분간 시범강의를 하게 되는데, 자신이 평소해 해오던 강의 내용을 여러 코치와 강사들 앞에서 평가를 받는 자리가 이 모임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할 수 있다. 


주제는 무엇을 해도 되지만 시간은 10 분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함께 참석한 강사들과 코치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했다. 나는 평소 1시간 또는 2시간 분량을 특강을 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10분 정도로 줄여서 강의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 강의에서도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만큼은 잘하는 편이라 문제될게 없으리라 생각하고 평소 강의자료 내용 중 슬라이드를 대충 줄여서 10분 강의에 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자료를 10분 분량으로 줄일 것이 아니라, 10분용 강의자료를 다시 만든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했어야 했다. 자료를 줄이기는 했지만 핵심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슬라이드는 거의 줄이지 못하고 어설프게 2시간용 자료를 얼기설기 짜깁기를 했으니 평소 강의의 맥락과 구조가 흩어져 버린 것이다. 정해진 시간 관리도 실패하면서 강의 마지막에는 쫏기듯이 마무리를 하는 바람에 전체 스토리라인도 무너지고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끝나 버린 것이다.


이어지는 강의 평가와 코칭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신랄한 피드백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많은 분량의 강의 자료를 더 버리지 않은채 10분용 강의를 다시 만들지 않고 이전의 강의자료에 집착했던 것이 이날 10분 강의를 망친 주범이 된 셈이다. 평소 강의에서 해오던 1~2시간 분량의 메시지를 10분 만에 소화하려고 하다 배탈이 난 셈이다. 명강사 선배들이 계속 '잘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이날 강의를 망친 사람은 나 뿐 아니었다. 상당 수의 명(?)강사 분들이 이 날 10분 강의에서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강의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분들 역시 나처럼 좀 더 많은 컨텐츠와 메시지에 집착하다 핵심 메시지를 놓쳐버린 셈이 된 것이다. 다시 하면, 혹은 시간이 제대로 주어진다면 잘할 수 있다라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명강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진짜 명강사라면 자신의 컨텐츠를 10분, 20분, 30분, 60분과 같이 시간 단위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린왕자를 쓴 생 텍쥐베리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고 했다.


보통 우리들은 가능하면 더 갖다 붙이고 더 채우려 한다. 보충 자료를 통해 자꾸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려고 그 부족한 분이 채워지기는 커녕 계속 더 부족한 것만 나타나 강의분량은 한없이 늘어나게 되고 이런 상황은 강의 직전까지 계속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늘 정해진 시간 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하게 마련이고 결국, 정해진 시간에 준비된 얘기를 다 하지 못한채 끝나고 이 과정에서 핵심 메시지를 놓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 준비를 할 때마다 경험하는 일들이 있다. 처음에 강의안을 만들때는 강의 슬라이드 전체가 많은 글들로 채워진다. 몇 번 씩 수정하고 내용에 대한 숙지상태가 높아질수록 점점 글이 그림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글자 몇 자와 그림 한 두 장면 만으로도 슬라이드가 구성될 수 있음을 알게된다. 군더더기가 제거되고 전달할 메시지 만 남게되는 셈이다. 생 텍쥐베리의 통찰력 처럼 더 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셈이다. 강의의 완벽함에 가까와져 가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의식성장 정도가 낮을수록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해야하고 더 많은 미사여구가 필요하게 되지만, 성장정도가 높아질수록 몇 마디 하지 않더라도 소통이 되고 그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깊히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 뜻이 아닐까 싶다. 깊은 생각은 깊은 성장을 의미하고, 성장이 성숙한 상태에서 표출되는 절제된 표현으로도 쉽게 상대의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하는 기법을 배우면서 들은 일본 정원의 대부 코이치 가와나 박사가 했다는 말, "핵심을 살리려면 덜 중요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숨기고 감추는 미학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비움의 지혜를 일깨우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숨기고 감추는 것은 먼저 많은 지식과 지혜가 채워졌을때 가능한 법이다. 덜 중요한 것을 알아채리는 시각은 어는 정도 채워졌을때 다가오는 것이다.


짧은 강의 연수과정을 통해서 비움의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나 비움은 채움 다음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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