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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26. 2018

끈질긴 꼬리표, 학력!

주인공의 삶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할 부분 중 하나!


최근 나는 결혼식장에서  한 동안 뵙지 못했던 직장 선배를 거의 20년 이상 지나서 만났다. 그 선배는 같은 대학을 나온데다 큰 몸집에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후배들을 편하게 해준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은 서울 서부 연구개발 단지로 한창 분양시장이 달궈져 있는 중심 자리에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꽤 성공을 하고 여유있는 만년을 보내고 있었다. 나보다도 7년이나 연배가 높은데도 나이도 별로 들어 보이지 않고 활기차 보여 좋았다.


그런데 그 분이 오래간만에 나를 만나 몇 가지 안부를 물은 후, 첫번째 한 얘기가 "**야, 나 중퇴 후 20년이 지난 뒤에 내가 다니던 학교를 마칠려고 지방에 머물면서 졸업했다"고 했다. 그 분은 4년제 대학에서 2년 만 마치고 다른 일을 하시다가 경력 사원으로 내가 대학 졸업 후 처음 몸담았던 직장에 입사했던 분이었다. 


우리는 그냥 직장내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로 알고 지냈지만 그 분은 대학중퇴 학력이  직장 내에서 꼬리표 처럼 달려 그 분을 괴롭혀 온 것이다. 결정적으로 학업을 마치기로 결심한 것은 직장에서 상사가 자신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면서 지방 파견을 마친후 처우 등을 이야기 하다가 이력서을 보며 하는 말, "자네 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나 보네..." 란 얘기였다고 한다.


이 분의 그런 행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대학교 학력을 마치지 못한데 대한 컴플렉스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다른 사회에서는 콤플렉스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콤플렉스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초연하기 힘들다.


인터넷 검색자료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고졸 학력을 가진 분들은 그들대로, 또 전문대 학력을 가진 분들은 또 그들대로 대학졸업을 못한 것에 대한 콤플랙스를 갖는다. 우리 사회가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졸 학력을 가진 분에게 "학교 에서 전공은 뭘 하셨나요?"란 질문은 상대를 크게 당황하게 하게 되고 그게 또한 그들에게 컴플렉스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고졸신화란 말이 있다. 어렵던 시절 상고나 공고 출신이 조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고졸신화의 주인공들의 현재 학력들을 보면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대학을 나왔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미 그들은 고졸이 아닌데도 당시 대학졸업을 하지 않았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 그 만큼 우리 사회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채 성공하기 어려움을 반증하는 말이고, 당시 대학을 못갔으면 나중에라도 가방끈을 늘리지 않으면 조직에서 성공하기 힘듬을 반증하고 있다.


학력은 학사, 석사, 박사로 이어지는 가방끈 길이를 의미하는 학력 뿐 아니라 SKY와 같은 어떤 수준의 대학을 졸업했느냐의 여부가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이게 사회에서는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떤 학교를 졸업했느냐가 그 사람의 지능과 능력수준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위권의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은 그 만큼 학습능력이 뛰어난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미 이 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 내부집단에 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상위권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다시 가방끈을 늘려서라도 그 부분을 희석하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처음 나온 학교수준에 의한 꼬리표 역시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니며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자료


대기업에 실장급 보직을 맡고 있는 여성 후배간부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들은 인서울은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지방의 모 대학 수학과에서 열심히 재학 중이었는데, 학교를 보내고 난 뒤에도 후배는 아들을 좀 더 나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에 계속 아들에게 편입학이나 재수 등을 권했는데, 어느 날 아들의 한 마디를 듣고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한다.


"엄마, 내가 창피해?"


아들은 나름대로 현재 다니는 대학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가 자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아들이 엄마의 가슴에 콕 박히는 말을 던져버린 것이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울컥했다. 정확하게 그 이유가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아들이 너무 대견해 보였고 상대적으로 엄마의 태도 또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학력에 목을 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벌이구조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이 배우고 좋은 학교를 나오면 그 만큼 안정적인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사회가 더 심한 것 같다. 또한,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한이 된 우리들의 부모님과 선배세대들의 트라우마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회는 점점 더 다양화되고 복잡화 되고 있는 가운데 사람의 다양성이 벌이가 되는 시대가 되고있다. 새로운 시대에도 지적능력이나 학력이 무시되지야 않겠지만 그것 만으로 인정받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학습능력 만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멀어져 갈 것이다.


가방끈을 늘이는 것이 아닌 지적능력과 상위권 대학을 입학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능력이다. 타고난 능력은 내가 발버둥을 친다고 크게 바뀔 수 있는게 아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이 능력이 없다고 해서 내 삶을 콤플렉스 안에 갇히게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원칙적으로 학력은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필요할 때 갖추는 삶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지적능력으로 젊은 시절 갖춰지는 학력 만으로 평생을 보장받게 되는 것은 건전한 사회 구축 차원에도 맞지 않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소연 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 그런 사회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우뚝 서는 수 밖에 없다.  


끈질긴 꼬리표, 나의 의식성장으로 주인공의 삶을 추구한다면 서서히 끊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길고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면서도 자신 또한 필요함을 느낄때면 언제든지 새로운 배움을 추구하면서 도전적인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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