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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y 15. 2018

불편한 행복

생략된 불편함에서 행복을 찾아내다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고 추적 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물로 흥건한 산길 4키로를 묵묵히 걸었다. 우산을 받쳐 들긴 했으나 바람을 동반한 세찬 빗줄기가 몸 속으로 스며들면서 시작한 한기로 인해 애초 예상한 우중 속의 정취는 출발할 때 잠시 외에는 오직 목표지에 도달할 생각 만을 하면서 질퍽이는 진흙길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를 비롯해서 함께 여행했던 43명의 동행인들 중 한 분도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게 했다고 여행사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비가 오는 산길을 걸으며 색다른 운치를 느끼며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다면서 스스로들 위안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이날 연휴를 이용해서 남해 관광을 했다. 첫 날은 좋은 날씨와 함께 남해의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며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은 관광여행을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종일 비를 맞으며 관광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 이미지


이미 지불한 비용 때문에 우리는 아무 불만 없이 그 길을 걸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이미 지불한 돈 때문에 과식을 하게 되는 뷔페에서 과식하는 행동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왜 우리는 돈을 내고 그런 불편한 일을 즐기려(?) 했을까?


어쩌면, 비를 맞지 않고 호텔이나 커피숍 한 곳에 앉아서 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혹시라도 비를 맞으면서 무리하다 건강이라도 헤치면 더 큰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그런 사람은 없었다.


문명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생활에는 이제 불편함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되었다. 자동차가 걸음을 대신하고 세탁기가 빨래를 그리고 청소나 설겆이의 불편함도 기계가 대신해 주는 세계에 살고있다. 이것은 걷는다는 과정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자연과 사람들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과, 빨래와 설겆이를 하면서 겪는 불편한 과정은 생략되고 오직 내가 있어야할 목적지, 그리고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세탁물과 같은 결과물만 마주하게 된 세상에 산다는 의미다.


유전자 기술 발달로 고기를 얻기 위해 짐승을 키우고 짐승의 생명을 앗을 필요가 없어질 거라 한다. 유전자 기술로 단백질을 양성해서 가장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단백질이라는 결과물만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는 각종 농산물도 그 농산물이 생산되는 과정은 모른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라는 결과물만 마주하고 먹게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우리는 애써 그 과정이라는 불편함을 추구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고 있다. 어찌보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다시 그 불편함을 즐기기 위해 돈을 쓰는 셈이다. 왜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할까? 그것은 삶의 행복이 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해 전경


니체는 "여행의 보상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그 과정에 있다."고 했고,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대표는 "성공이란 것은 여행 중에서 맞딱뜨려지는 아주 우연한 행운"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가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만 우리 삶의 의미와 행복은 바로, 그 과정 속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늘어나는 캠핑족이 그렇고, 돈을 내면 훨씬 많은 양을 가질 수 있는 데에도 직접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그렇다. 탈 것을 이용하면 금방 갈 길을 각종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걷는 것을 즐기는 현상도 그렇다 할 수 있다. 좀 더 넓게 보면 사서 고생한다는 사람들은 다 불편함의 어떤 것에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에레베스트 등반에 성공한 사람에게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그렇게 힘들게 위험을 무릅쓰며 올라 갔느냐?" 라는 질문을 할 사람은 없다. 처음에 그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돈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지금 에레베스트 산을 오른다 해서 자신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힘든 그 과정을 겪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산을 대상으로 반복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 시간동안 다른 일을 하면 보다 실질적인 가치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면서....


나는 이번 우중 둘레길 트래킹을 통해서 과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점점 더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이 전부인양 하는 시대에 결코 무시하고 잊어버려서는 안될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 대신 그 과정의 불편함을 감내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지금 우리들이 힘들어하면서 생략하고 싶어 하는 과정의 불편함은 사실 나중에 내가 댓가를 치루면서 갖고싶어하는 소중한 어떤 것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불편함도 감사로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까지 이르게 된다.


트래킹 중 길가 고사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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