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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Apr 09. 2018

더러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

모두가 주인공되는 세상을 꿈꾼다

평창 올림픽에서 우승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기억하는지? 서울의 절반 수준인  인구 520만의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242명을 파견한 미국의 절반인 109명의 선수를 파견하고 미국이 따낸 23개 메달보다 많은 총 39개의 메달을 따 세계 1위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7개로 종합 7위를 했고, 노르웨이가 딴 금메달은 14개였다.

참가국 92개국에 7위의 성적은 우리 나라의 동계스포츠 환경을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의 스토리를 들으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게 된다.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로 인기를 끈 개그프로를 기억할 것이다. 박성광이란 개그맨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면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말이다. 이 말은 엘리트 중심주의, 1등 중심주의 사회를 비꼬는 표현으로 신분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답답한 국민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던게 아닌가싶다.

돌이켜 보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빈약한 사회자본 속에서 극심한 가난을 조기에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가정보다는 기업,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왔으며 사람에 대해서도 엘리트 중심의 투자정책을 펼쳐 왔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해왔고 이제는 먹고사는 분야에 관한 한 제법 큰소리를 칠 정도의 나라가 되었다.


인터넷 이미지


이러한 국가전략 하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남자가 중요했고 남자 중에서도 장남이 잘되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장남을 제외한 자녀들은 장남을 위한 희생이 당연했고 정부는 국가기간 산업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대기업 중심의 지원전략을 펼치는 동안 중소기업들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리의 성장 모델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되고 있을 정도로 현재 다른 국가의 자랑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 동안의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모두가 중요하게 대우 받아야 하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엘리트 위주의 정책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정부의 집중 지원으로 비대하게된 기업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정부와 언론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서서히 통제가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동안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인했 왔던 1등주의, 엘리트 중심주의의 결과란 것을 알게 된다. 


한국경제, 인터넷이미지


이제 노르웨이 선수단의 스토리를 얘기해 보자.


노르웨이는 천혜의 자원인 눈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동계 스포츠 저변 인구가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노르웨이 우승을 설명할 수 없다. 눈이 많으면서 노르웨이 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지역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우승요인을 설명하는 기사들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나라의 경쟁방식과 엘리트를 선발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노르웨이에는 13세 미만의 유소년 스포츠 선수단에서는 어떠한 점수기록도 허용하지 않고, 12세 이하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챔피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경쟁 중심의 스포츠가 아니라 즐기면서 협동을 배우며 서로 격려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운영하므로 재능이 있는 선수들도 보다 오랫동안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엘리트로서의 육성은 올림픽텐이라는 기관에 선발되고 난 뒤부터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터넷 이미지


이들에게 지원되는 예산을 봐도 국가대표선수에 대한 지원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다.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생계 유지가 되지 않아 선수들이 모두 목수, 배관공, 선생님과 같은 직업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이 동하계 포함 1억375만 파운드 예산이라면 노르웨이는 1,370만 파운드로 영국의 카누와 조정에 책정된 예산 만으로 동계스포츠를 운영한다고 한다. 스켈레톤과 봅슬레이는 돈이 많이 들어 아예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메달급의 컬링팀이 참가비가 없어 자신의 장비를 이베이에 팔기도 하고 동료들이 가난한 선수들의 캠프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들은 성공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에서 나와야 한다는 정신이 스포츠 팀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르웨이는 많은 메달을 땄지만 그들은 애초에 메달 목표가 없기 때문에 덤덤하다고 한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면 그 뿐이라는 그들의 선수단 분위기에서 지난 러시아 동계올림픽때 약물 투입을 해서까지 러시아 우승을 노린 것은 푸틴 개인의 정치적 야욕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경쟁과 효율만 내세우는 영미식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노르웨이 역시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영미식 개인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를 중시하는 협동주의적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패자는 죽고 승자가 독식해야 하는 시스템이지만 협동주의적 자본주의에서는 양보와 협력이 그리고 팀이 우선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협동과 연대가 경쟁시스템의 끝판인 올림픽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노르웨이 선수단의 승리로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몇 몇 엘리트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승리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으로 소중하게 대우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엘리트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몇 개의 재벌 만 독식하는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경제 생태계가 건전하게 육성될 수 있도록 벤처와 중소기업에도 기회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공평하면서도 모든 구성원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결집되어 나타나는 진정한 경쟁력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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