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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ul 02. 2018

층간 소음을 맞이하다

아이들을 살리기로 했다.

층간 소음,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나는 6층에 산다. 언젠가부터 층간소음이라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것을 실감하고 있다.


저녁에 소파에 앉아 TV 시청을 하고 있으면 드르륵드르륵 쿵쾅쿵쾅 아이들 뛰는 소리로 진동을 한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 크게 들린다.


낮 시간의 소음은 더욱 심각하다. 가끔 집에서 강의 준비나 책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들려오는 윗 층 소음은 더욱 크게 들릴 뿐 아니라 나의 온 신경을 그 소음에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잘 풀리지 않는 일을 할 때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기도 한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별난 사람들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면서...


나보다 10살 아래인 동생부부는 자녀가 네 명인데 아래 3명은 아직도 철 모르는 꼬마들이다. 작년에 아파트 1층 넓은 곳으로 이사 갈 때까지는 수시로 아래 층에서 항의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도 나는 동생부부 입장에서 생각해서 아래층 사람들이 너무 한게 아닌가 생각했다. 어린애들이 뛰면서 노는 것이 당연한 건데 이웃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 이미지


지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꼭대기 층에서 혼자 산 적이 있었는데, 혼자 사는 나에게도 아래층에서 시끄러워 못 살겠다면서 흥분한 채로 항의 방문했던 부부가 있었다. 심지어 화풀이한다고 막대기로 자신의 천정을 꽝꽝 치면서 위협하곤 했다. 이 때도 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경우나 나의 과거 사례는 모두 윗 층의 입장에서 말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아래층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입장이 바뀐 것이다. 아파트는 구조상으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답답하게 되어있다. 천정에 물이 새는 경우도 피해는 아랫 층이 입지만 원인은 윗 층에서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아파트에서는 아랫 층의 입장을 헤아리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는 셈이다. 이번에 제대로 아래층의 입장이 된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날 고민했다. 모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서 얘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웃과 얼굴을 붉히게 될까 봐 참았다. 그리고 동생부부의 힘들었던 순간과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것을 방해하는 것도 마뜩잖아 더욱 참고 견뎌보려 했다. 


인터넷 검색 이미지


그렇게 지내다가 경비아저씨에게 말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정중한 메모를 남겨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 방법은 이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생각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결국 하루는 너무 심하게 울려 옷을 갈아입고 전할 말을  준비해서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젊은 부부와 예쁘장한 꼬맹이 두 녀석이 나타났다. 두 녀석을 보는 순간, 아래층에 산다고 인사만 하고 생각했던 말은 못하고 대신 "꼬마 녀석들이 잘 뛰네요..." 라고 하고는 내려왔다. 내 뒤통수를 향해 부부는 다급하게 죄송하다는 인사말을 던졌다.


그 날은 잠시 조용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다시 소음이 시작되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대책이 없다.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채택한(?) 방법은 이웃에 나눌 농산물이 생기면 문 두드리고 건네면서, "애구, 이쁘다. 너네들이 콩콩 뛰는 녀석들이구나!"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오는 것이 전부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소음은 여전하다. 세 들어 사는 윗 집에게 방음공사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창 자라는 꼬마의 두 발을 묶어 두라고 할 수는 더욱 더 없다. 


그래서 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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