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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Feb 11. 2019

뱃놀이의 진수, 파리 관광

한강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인구 65,233,271명 (2018 추계)  

수도 파리(인구 214만-서울 1/5, 면적 105-서울의 1/6) 

면적 543,965㎢  (대한민국 5배)

언어 프랑스어  

종교 로마가톨릭(83%), 개신교(2%), 이슬람교  


프랑스의 인구는 우리나라보다 천 만 정도 많지만 면적은 5배가 많은데 서유럽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이고 2/3가 평야로 되어 있는 비옥한 나라다. 우리에게 예술과 패션 축구 와인 등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지만 과학과 스포츠 강국이기도 하다. 선주민은 켈트족이었으나 로마와 프랑크인이 들어와 켈트, 라틴, 게르만이 혼합되어 지금의 프랑스인이 되었다고 한다.


일인당 국민소득 42,500달러로 서유럽 중간 정도이지만, GDP규모로는 미 중 일 독 영국에 이어 세계 6위의 강대국이다. 가장 많은 공항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4위의 자동차 생산국이기도 하다. 우리의 KTX기술을 이전한 TGV의 알톰사가 프랑스 기업이다. 


정치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루이16세 황제 부부를 단두대에 처단하고 '인권선언'을 하고 구체제를 무너뜨렸으나 나폴레옹의 지배와 세계 1, 2차 대전을 통한 다양한 정치적 변화를 거쳐 1944년에 의회민주주의 회복하였다. 

식사후 이동한 곳은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원래 박람회를 마치면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논란을 거쳐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건축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에서 보듯 구스타프 에펠이라는 건축가가 공모에 당선되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명사고 없이 2년만에 완성한 탑인데 탑의 높이는 320미터로 건립 당시에는 세계에게 가장 높았다고 하고, 탑에 쓰인 못의 숫자만 2500만 개, 탑 무게는 1만톤이라는데 감이 잡히지 않는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이드말로는 1시간 정도 소요될 거란다. 여름 성수기는 보통 5시간 정도 걸리는데 비수기라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 한다. 기다리면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철탑의 위용은 대단했다. 에펠탑은 모파상을 비롯한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파리 전통적인 건물양식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철거시위운동을 했다고 하지만(나도 반대했을 것 같다. 파리의 분위기와 에펠탑의 철탑 분위기는 너무 생뚱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든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효과를 단순노출효과, 에펠탑 효과라고 한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파리 아니 프랑스, 유럽내에서도 손꼽는 랜드마크가 되고 그 가치만으로도 우리나라 1년 예산에 육박하는 360조에 이른다. 에펠탑이 완성된 후, 에펠탑의 레스토랑에 와서 날마다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던 모파상을 보고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흉물이라고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는데, 지금은 왜 여기 계시지요?  "파리 어딜 가나 그 괴물이 보이지 않는 않는 곳이 없는데 이 안에서 유일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1층까지는 53미터, 2층까지는 100미터인데 엘리베이터는 과거 방식인 강물을 이용하여 수동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2층으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한 칸에 50여명씩 탈 수 있었다.  이렇게 맑게 개인 파리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던데 우리팀은 여행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에 올라가면서 파리 시내를 동영상으로 남겼다. 특히, 최근에는 마크롱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데모 때문에 개방하지 않는 날도 있는데 여러 면에서 운이 좋은 팀이라고 했다.


2층에 올라가서 파리시내 전체를 보며 설명을 들었다.

몽마르트 언덕이 저 멀리 눈에 들어왔고, 바로 앞에는 나폴레옹이 아들을 위해 지어 주었다는 사요궁이 좌우 날개같이 펼쳐져 있고, 세느강변 위로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건너편의 오르세 미술관(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이 있는 곳),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가 보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유해가 안치된 곳 등등 명소 몇 개를 더 설명해 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림 좌측 하단에 에펠탑의 그림자가 보인다. 탑 실내에 들어가서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마카롱 판매하는 곳에서 맛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다음은 개선문으로 이동하였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지시로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보지도 못하고 30년이나 걸려 1836년에 완공되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모방했는데 규모는 2배라 한다. 50미터 정도 높이라는데 느낌은 더 크고 웅장해 보였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 골 광장은 도로로 둘러쌓여 있어 접근하려면 지하도로 이동해야 했는데 멀찍이서 설명만 들었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600명의 장군들의 이름 새겨져 있고 전사한 사람의 이름에는 줄이 그어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외부 벽면에는 아부키전쟁, 터키에서의 승리, 오스탤리츠 전쟁 등 나폴레옹의 영광스런 장면들이 새겨져 놓은 것이라 했다


개선문이 앞에서부터 콩코드 광장에 이르기 까지 넓은 대로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상제리제 거리다. 개선문이 있는 에뚜알 광장을 중심으로 12대로가 나 있었는데 12개의 대로가 별모양으로 둘러싸 있어 별처럼 보인다고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상제리제 거리는 엘리제의 뜰이라는 뜻이다. 나폴레옹3세때 19세기 후반 파리의 부호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이 개인 저택을 갖게 되면서 그들의 세련된 취향과 취미를 맞추기 위한 레스토랑, 유명브랜드 상점, 화랑이 들어서면서 유명해진 곳이라 한다.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나무들로 조성된 전체 약 2.3키로이고 폭은 70미터 되는 거리라 하는데 20여 분 주어진 자유시간 동안 상제리제 거리를 경험하기는 무리였다. 넓은 광장같은 보도를 이동하며 사진촬영을 하다 기념품 하나 산다고 했던게 일행들을 20분이나 기다리게 만드는 해피닝을 일으키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상제리제 거리 - 인터넷자료]


콩코드 광장은 역사적인 장소이지만 우리의 관광일정에는 들어있지 않아 버스로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콩코드는 화합, 조화의 의미로 이 광장의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1829년 이집트가 프랑스 샤를 10세에게 선물로 준 것데 이동에만 4년이 걸렸다 한다. 프랑스는 답례로 대형시계를 주었으나 10년도 못가 고장나 이집트가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가 바로 프랑스혁명으로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앙투와네트가 처형된 단두대가 설치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콩코드 광장 오벨리스크 - 인터넷사진]


세느강 유람선, 바토무슈

저년 6시15분부터 시작된 세느강 유람은 한강 유람 비슷한 걸로 생각했는데 안탔으면 후회할 뻔 했다. 프랑스 파리는 서울 인구의 1/5 밖에 안되고 면적도 1/6 수준의 작은 도시이지만 우리처럼 높은 층의 건물이 거의 없다. 우리 한강 주변에는 거의 고층아파트가 병풍처럼 도심을 차단하고 있는데 반해, 세느강 주변에는 역사적 주요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자리 잡고 있어 세느강변을 따라 흐르는 야경과 함께 한바퀴 돌면 파리를 전체 둘러 보는 셈이 된다. 자료에 따르면 파리 시내 주요건물의 60%가 세느 강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차가운 강바람과 말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운 야경에 정신이 빼앗겨 중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외국어 마지막에 방송되는 한국어 설명으로는 집중할 수 없어 무슨 건물인지도 모른 채 황홀한 야경 사진만 남기게 되었다. 

[함께 여행한 대학 친구 4명의 멋진 포즈]


세느강을 보기 전에는 서울 한강에 비해 규모도 적고 서울의 확트인 야경 만 하겠냐는 생각을 확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가보지 않고 함부로 말한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 하이라이트는 에펠탑 야경쇼였다. 저녁 7시가 되자, 에펠탑 전체가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일제이 탄성을 질렀다. 꽁꽁 싸맨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얼어들어가는 것을 잊고 세느강의 마력에 빠졌다. 

화려한 세느강 야경 속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물은 노틀담 성당이다. 파리 노틀담 성당은 1240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100여 년에 걸쳐 포치, 예배당 등을 지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데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로 유명해진 곳인데 앞서 루브르 미술관에 나왔듯이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야경]


노틀담은 우리의 담(여성, 마리아) 즉, 우리들의 마리아란 뜻이다. 그래서 이 곳만 노틀담 성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노틀담 성당이 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파리 노틀담 성당이라 해야 맞는 것이다. 두오모성당도 마찬가지다. 두오모는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므로 해당 지역을 말하고 두오모성당이라 해야 맞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과 같은 식으로... 이것을 몰랐던 나는 도시마다 같은 성당이름이 자꾸 나와 햇갈렸다. 

[낮에 본 노틀담 성당-인터넷자료]



그리고는 세느강을 따라 만난 건물들은 세느강 티켓에 새겨진 것들을 통해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이 아들을 위해 지어주었다는 사이요궁,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산더3세 다리, 별명이 많은 콩코르드 다리, 가장 오래 되었다는 퐁네프 다리, 인상주의 화가 작품이 많은 오르세미술관, 시테섬, 노트르담 대성당, 상스저택, 파리시청 생자크 탑과 같은 명칭들이 기억에 남는다.

[야경모음... 어디가 어딘지는 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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