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뭔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저... 다른 게 아니라... 해... 핸드폰 2개 쓰는 거요..." 주눅이 잔뜩 든 채 용건을 겨우 전달했다.
최근에 알게 된 '데이타 나눠쓰기 서비스'를 가입하러 갔다가 집 근처 대리점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다. 핸드폰 1회선 가입자가 테블릿이나 서브 핸드폰으로 전화 번호 하나를 더 받아 데이타를 나눠 쓸 수 있는 서비스인데 1회선까지는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 해서 방문한 것이다.
그동안, 맛이 간 구형 내비게이션을 대신해 핸드폰으로 실시간 내비게이션과 음악을 들어 왔는데 핸드폰을 붙였다 뗐다 해서 번거러울뿐 아니라 운전 중에 오는 문자로 운전에 방해되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구형 핸드폰을 개통하여 내비게이션과 음악 듣기 용도로만 활용해 보려고 한 것이다.
선 채로 용도를 확인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점원과 마주 앉아 서비스 가입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업무 처리 중에 나눈 몇 마디도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사용 중인 요금제로는 데이타 나눠 쓰기가 힘들다는 둥, 데이타 사용량 확인하는 방법은 아느냐는 둥... 나름 통신회사 임원 시절을 보냈고, 핸드폰을 수시로 바꾸면서 여러 기능을 알고 있는 것을 은근히 자랑해 가며 살면서 살아온 '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굉장히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돌아 보면, 그 직원의 서비스 마인드가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그게 내가 처한 현실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바쁜 평일 낮에 핸드폰 대리점에 오는 늙수그레한 사람이 그들에게 돈이 되는 고객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눈에 나는 말도 느리고 판단력도 흐려진 '노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나마 그 직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질 때는, 나에게 SK가 제공하는 정수기 가입할 의사를 물을 때 뿐이었다(나는 그때 정수기를 거의 공짜로 준다 해도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인하고 싶어도 이미 내 외모가 그들의 눈에는 애써 듣고 싶지 않은 '아버님'일 뿐 아니라, 돈 안되는 귀찮은 '노인'이 된 것이다.
요즘 들어 아내도 나처럼 뭘 자꾸 잊어 버린다(본인은 그것을 3초 기억력이라고 한다). 최근에 부담스런 일을 앞 두고 있어서인지 그런 일이 잦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건방지게도) 못마땅한 듯이 한 소리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서 어떻게 하면 무시 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잘 전달할까를 고민한다. 앞으로 많이 무시 당할 사람끼리라도 서로 보듬기 위해서.
슬프지만 무시 당하는 게 당연한 세월이 온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기분 나빠 해서는 안된다.
최대한 늦춰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받아들이면서 그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 것이다.
그래도 그 친구에게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혹시, 기분 나쁜 일 있어요? 아님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요? 왜 따지듯이 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