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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ul 23. 2021

이사와 비움

비우면서 얻는 것들....

최근에 이사를 한 분들은 다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14년 만에 이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버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다.  버리는 데만 5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아파트마다 쓸만한 물건을 내 놓은 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꼰대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상상도 못할 쓸만한 것들을 눈 질끈 감고 버렸다. 낡아 못쓰게 되어 버리기보다는 집규모가 줄면서 혹은 새집 분위기에 맞지 않아 버리는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을 이용해서 나눔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고 멀쩡한 것을 돈까지 주면서 버리려니 가슴이 쓰렸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든 나눔이나 판매를 고민하다가 이삿날이 가까와 오면서 숨어 있다가 밑도 끝도 없이 출현하는 녀석들로 인해 쓸만하고 좋은 것을 버리면서도 편안한 마음이 되어 갔다. 나중에는 이렇게 되면 이삿짐 견적을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버렸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몇 권의 책과 영상을 보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이번 기회에 집안 물건들에 대해 통제 가능한 심플한 삶을 추구해 보자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늘 사용하는 물건들로만 갖추고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는 물건들은 다 버려 보기로 결심했다. 책을 통해 비움(버림)은 삶의 치료제가 되고 하나의 철학이자 예술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창 생존투쟁을 하며 삶에 찌들어 있을 때는 사실상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직위를 내려 놓고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좀 더 젊어 이와 같이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성장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진다. 과잉이 사라지고 나면 자기 본연의 모습에 더욱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꼼꼼한 편이라 집에 있는 수납장마다 번호를 붙여 놓고 마치 DB 관리하듯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리해 놓고 관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각방에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모아 보니 라이터가 10개, USB 11개, 가위가 9개,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도 보이지 않던 뿔자도 5개나 있었다. 사실 최고의 수납은 수납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특히 보이지 않는 공간에 수납하는 것은 버리기 전에 머무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나중에 쓰려고 보관해 둔 물건 중에 나중에 찾아 쓴 물건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버려도 편안한 마음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수납하기 좋다는 물건에 속지 말기 바란다. 이것은 물건을 숨기기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바란다.)


입주 인사

책에서, 적은 물건만 소유함으로써 여행가와 같은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여행가와 같은 설렘을 맛보면서 살기 위해  너댓 가구가 펜션 갔을 때 불편없이 지내고 있올 정도의 물품만 남기고 다 버리자는 원칙을 정했다.  수많은 수저와 그릇, 컵 등이 이번에 왕창 버려졌다. 지금 부엌에는 숟가락 2개와 젓가락 2개, 밥공기 2개 정도만 나와 있다. 그리고 손님을 위해 필요한 정도만 남기고 다 버렸다. 그리고 1년 이내 입지 않았던 옷, 언젠가 읽으려고 둔 책 등도 버리거나 기증했다(그래도 많이 남았다ㅎ). 책 같은 경우 같은 책을 또 구입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어플을 이용해서 보유중인 책에 대해서 도서관 서가시스템처럼 입력해서 관리하도록 했다. 계절적인 이유가 아니면서 수납장에 들어있는 옷은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보관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 행거시스템(드레스룸이라고 하기도 함ㅎ)을 구축해서 현재 입는 옷은 모두 바깥으로 내어 한 눈에 보이도록 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쓴 곤도 마리에가 버리기 가장 어렵기에 가장 늦게 정리해야 한다고 했던 추억을 소환 시키는 것들도 마구 버렸다. 서류, 사진, 책들도 대거 포함되었다. 가령, 입사하면서 받았던 월급명세서, 대리/과장/부장 직책이 더해지면서 일했던 흔적이 남은 수첩, 사령장 등 그리고 사진도 상당수 찢어 버렸다. 심지어 등기권리증도 찢어 버리는 바람에 추가로 돈이 들게 생겼다(등기 전산화가 되었어도 형식적인 집문서 역할을 하는 등기권리증은 보관해야 한단다.).


다소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버린 것은 그때 가서 사는게 더 이익이라는 것을 이번에 이사가면서 본 몇 권의 책과 유튜브를 통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버려진 물건 중에 다시 구입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거의 없을뿐 아니라 버리고 나면 그 만큼 새로운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지금 집값 생각해 보면 그 공간의 가치가 먼저 버리고 나중에  그 물건이 필요할 때 몇 개 사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버리고 정리됨으로써 생기는 정신적 성장부분은 따로 얘기 않음.).


입주 환영 레터


참 많이 버리기도 했지만 새로 구입한 것도 제법 된다. 대표적인 것이 정수기와 건조기 그리고 전기압력밥솥이다. 우리 집에는 정수기나 건조기 뿐 아니라 김치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 ... 이런 전자 제품들이 없다.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살림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제품 구입을 완강히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하면서 성공한 것이다. 특히 건조기 구입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아내가 설득된 배경에는 앞으로 내가 빨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제안과 두 며느리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부의 삶이 건조기가 있는 삶과 없는 삶으로 나뉠 정도니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전기압력밥솥도 참 잘 구입했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수동압력밥솥으로 센불 6분, 약한 불 8분 그리고 뜸 10분을 일일이 타이머를 눌러가며 고생했던게 억울할 지경이다.


이제 이사한 지 보름 정도 지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긴 했지만 벌써 어디에 뭐가 있는지 쉽지 않을 정도로 수납 공간에 많은 것들이 숨어 버렸다. 이제 수납 공간마다 번호를 매기고 그 공간에 들어 있는 물건을 적어 둘 생각이다. 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심플한 삶을 추구한다며 시작한 일이지만,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보면 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것을 갖고 심플한 삶을 산다는게 말이 되냐고 항의할 수도 있겠다.(요즘은 집들이 문화가 없어져 다행이다.)   신축 건물이라 이전보다 깔끔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서서히 다시 창고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장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무 많이 가지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적게 가지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라고.

너무 많다, 적다는 것도 주관적인 것이니 스스로 소유에 가치를 둘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치를 두는 삶을 살도록 부단히 노력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아무튼, 이번 이사는 나를 또 한번 성장케 하는데 충분히 도움되는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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