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산책을 하다가 어지럼증으로 MRI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는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지금은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2주 정도 심각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오래 동안 걷거나 서 있을 수 없었다. 원인은 고지혈증으로 보인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일 뿐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고지혈증 약을 처방 받고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 병원 가기 전에 방문했던 동네병원 의사로부터 책 한 권을 소개 받았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는 책이다. 이 책은 그동안 심혈관계 질환의 주범으로 여겨져온 콜레스테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접하는 성인병의 가장 큰 주범이 콜레스테롤과 지방이다. 그게 아니라 콜레스테롤과 지방은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부족해서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며 범인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처방하는 스타틴계 약물은 우리의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성욕 감퇴의 원인이되며 심지어는 단기 기억상실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심장 전문의이며 미국심장학회 정회원이자 영양학회 정회원이고 인지행동 치료의 전문가가 쓴 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처방해 오며, 지방이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며 음식조절을 하라고 권한 사람도 의사다. 의사들이라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 왜 이런 극단적인 일이 생겼을까? 이 책은 대부분 의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콜레스테롤에 대한 믿음을 형성한 연구결과는 대형 제약회사와 그 제약회사의 지원으로 연구된 결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그간 콜레스테롤을 낮추면 생기는 효과에 대한 연구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조목 조목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 내가 이 책을 믿고 지금 고지혈증 약을 끊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대다수의 의사들이 콜레스테롤은 낮추기 위해 처방하는 약을 계속 복용하는 것이 맞을까?
만약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사결정은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다른 일반적인 의사 결정처럼 대다수의 믿음에 맡겨 버릴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 나의 생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믿음대로 따라 가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신앙 문제에 관한 것일게다. 대표적인 신앙 중 하나인 신구교만 하더라도 중세시대에 끝난 것(개인 입장임)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고자신의 그 믿음대로 자기의 상당 부분(시간, 돈)을 즐겁게 희생(?) 하며 살아 가고 있다.
신앙이라는 이름의 믿음에 관한 문제라면 믿어도 그만,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란 생각이다. 자기 믿음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는 불쌍한 사람이 되겠지만 아무 믿음이 없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이 불쌍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매달리면서 돈까지 갖다 바치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내가 불쌍하게 보는 그들도 많은 돈이 들기는 하지만 영혼의 위로를 얻거나 신앙을 가진 사람끼리 뭉치는 네트워킹 비용으로 생각해 보면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대기업 급여의 상당 부분을 매월 갖다 주며 육체적으로도 아주 힘들게 주말에 봉사하면서도 '나는 행복하다'고 되뇌이며 그 행동을 반복했고 또 실제로 행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부분에 의지하는 대가나 혹시 있을지 모를 내세에 대한 보험을 드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정치적인 신념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신념은 종교와는 좀 더 다른 면이 있긴 하다. 내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지배(정치)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정책 하에 살아야 하고 그 내용은 현실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신념에 맞는 정치인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지난 정부들을 통해서 경험했다. 그리고 이 문제도 신앙과 같은 부분이라 내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도 외쳐 보아도 상대의 정치적 신념은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체득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종교와 비슷한 면이 있어 죽을 때까지 자기가 내세우는 정치적 신념에 의해서 자기 돈과 몸을 희생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최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종 앞에서 군인모자를 쓰고 장례식장에서 나타나 거수경례를 한 사람을 생각해 보라! 상당수의 사람은 그를 이상하게 보고 언론의 보도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연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 수 있다. 그 사람은 자기 정치적인 신념대로 살면서 자신의 믿음에 충실한 행복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허경영씨를 따르면서 그의 손발이 되어 헌신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허씨 지지자에겐 죄송). 자기가 믿는 부분만 믿으려 한다는 부분에서 정치적 신념은 종교를 닮았다. 정치적 주장은 인간이 조작하는 것이라 조금만 들춰보려 노력하면 종교적 신념과는 달리 그 실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친한 친구 몇 명과 대화하면서 내 착각이었음을 확인했다.
정치나 종교에 비하면 자연과학에 대한 믿음은 아무 문제가 안될 정도다. 지구가 태양을 돌든 태양이 지구를 돌든 조금 늦게 그 사실을 안다고 나한테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 내가노력하지 않더라도 내게 미칠 손해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직면한 콜레스테롤 문제는 내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고 내 가족에 직결되는 문제다. 만약에 새롭게 안 지식이 맞다고 확신한다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 낼 것인가? 이 또한 기존에 가진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바꾸는 것 못지 않게 힘들다. 당사자가 우연히 그 책을 접한다면 모를까 그렇게 하기 전에는 그냥 책 한 권 읽고 잘난 척하는 사람의 푸념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이 바뀌기 어려운 것일게다. 개개인의 관계에서는 상대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정도이지만, 이것의 본질에 이르면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다.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본질이다. 콜레스테롤 저하제가 팔려야 돈이 되는 사람들의 기득권,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믿은 커져야 먹고 살 수 있는 기득권,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집단이 승리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에 유리한 기득권, 신념으로 포장되어 있는 사람들의 주장도 한 꺼풀 들춰 보면 기득권에 대한 방어이거나 자본주의 본질인 돈에 대한 방어로 귀결됨을 알게 된다. 그렇다. 결국은 돈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 앞에 고분해지고 돈 앞에 무너진다. 나의 종교도, 나의 정치적 신념도 그리고 심지어는 목숨에 관계되는 약물마저도...
콜레스테롤 저하 처방을 접하면서 기득권의 믿음에 대한 문제점까지 가 버렸지만, 이 책의 주장 몇 개를 더 남기고 마무리 하자면 이렇다.
지금까지 심혈관계의 해결사로 알려진 콜레스테롤 저하는 자본의 의해 조정된 의사들의 사기극이란 의미다. 콜레스트롤은 성호르몬과 비타민 D, 소화에 필요한 담즙산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160미만으로 낮아지면 오히려 우울증, 공격성, 뇌출혈, 성욕 감퇴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콜레스테롤 뿐 아니라 포화지방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지방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는 LDL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장병을 유발하는 나쁜 LDL분자는 감소하고 무해한 LDL은 증가시켜서 그런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지방섭취로 인해 증가하는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심혈관계의 진짜 원인은 염증이므로 염증에 치명적인 탄수화물과 당이 주범임을 역설한다.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혈액검사에서 종합 콜레스테롤 수치와 중성자지수(트리글리세이드), HDL(좋은), LDL(나쁜) 이 네 가지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심혈관 질환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아니라 중성자지수와 LDL비율, 즉 중성자지수가 150이고, LDL이 50이라면 중성자지수가 LDL의 3배수가 되는데, 이 배수는 2배 안으로 맞추는게 심혈관계 위험을 줄이는 대책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나는 이렇게 봐도 심각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기존의 고착된 믿음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기존 신념을 깨는 일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정말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요즘 와서는 그냥 각자 사는대로 살게 그냥 두는게 답이라며 곧잘 체념해 버리는 내 모습이 좀 슬프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