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난 지 7개월이 지났다. 서울의 도봉산역 다음 전철역 가까운 곳이니 서울 가는 길이 그리 멀지는 않다. 서울에 거주할 때보다 대부분의 서울 목적지는 이전보다 30분쯤 더 걸리기 때문에 서울 가는 길은 큰 일 중에 하나가 되었고, 대중교통이 만만치 않는 지역이라 자차를 몰고 나가는 경우는 여지없이 마주하는 서울의 교통 체증에 서울을 떠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되뇌이게 된다.
직장이나 교육 문제(개인적으로 교육 문제는 동의하지 않지만)와 같이 서울에 거주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서 서울 강남 중심에 살면서 좁은 주거 공간과 주차난에다 종부세 걱정을 하면서 버티는 사람들은 내 기준으로는 참 답답해 보인다. 이런 내 생각을 어느 모임에서 표현하면서 그런 사람들은 바보같은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가 어떤 지인이 "목동이 집인데, 매일 주차가 힘들어 차량을 밀면서 주차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바로 당신이 말하는 바보같은 사람이요."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급히 여러 번 사과한 적도 있다.
사실 앞에서 말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서울 어느 공간에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주된 이유는 아마 첫째가 더 오를 집값 때문일 것이다. 이건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본다. 내가 이사 후에도 그 집값이 15%정도 올랐으니까. 지금은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추세라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지금껏 살면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버틴만큼 더 부동산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세컨라이프를 누릴 나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집을 팔고 외곽으로 나가면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미루는 것으로 밖에 안된다. 계속 미루다 건강 연령까지 지나버리면 그 집의 가치로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은 멀리 사라진다. 마치, 더 나은 노트북이 계속 나올 것을 우려해서 최신 노트북 사는 것을 주저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결국 최신 노트북을 써 보지 못하고 병상에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다음 이유로는 여성의 반대를 많이 거론한다. 자신은 괜찮은데 아내가 그 지역을 떠나기 싫어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나이가 들면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둘째 아들 내외가 집문제, 육아문제로 전라도 광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고 얘기했을 때 서울은 한번 떠나는 다시 들어오기 힘들다고 지인의 우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에들어오지 않고 지방에 계속 살면 되지 않을까요?" 원래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고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고 할 때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이는 사는 장소와 집의 크기와 같은 물질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심지어 같은 서울에 살아도 어느 지역에 사는지에 따라, 같은 강남에 살아도 어느 동에 사느냐에 따라 사람을 달리 본다는 얘기도 있다.내 기준에서는 이런사람도 안타까운 사람이다. 사람에게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삶을 청산하면서 새로운 주거지에 대한 몇 가지 목표가 있었지만 거주했던 지역이 집값이 낮은 지역이라 선택지가 그렇게 많은 것은아니어도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집을 찾았다. 기준 중 하나는 아내와 나는 아직 직업이 있었기에 두 직장의 중간 정도여야 했고, 서울 아파트 처분가의 반 이하면서 자연에 가까우면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한적한 공동주택인 저층 아파트나 산세권의 신축 빌라 등이 대상인 가운데 지금의 거주지가 결정되었다. 발품은 판 끝에 6동으로 이루어진 총 48세대인 북한산 둘레길에 자리잡은 신축 빌라에 입주를 포기한 가구 대신에 우리가 입주하게 되었다.
우선 교통이 편해졌다. 아내도 나도 출퇴근 시간이 30분 정도 단축되었다. 이것만 해도 큰 혜택이지만 서울에서 살면서 움직일 때 생각해야 하는 교통체증, 주차 등의 문제에서 훨씬 자유로와졌다. 서울 인근임에도 쇼핑센터나 편의시설과 음식점 수준도 교통도 모두 만족스럽다. 그리고 주거지가 인터체인지에서 멀지 않아 늘 확 트인 도로를 주행하기 때문에 서울 시내에서 겪는 교통 체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끼리 부대끼는 느낌이 좋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4천 세대가 넘은 아파트인데 10년 이상 살아도 옆집 외에는 알고 지내는 집이 없었다. 이곳은 같은 건물에 사는 세대는 8세대 밖에 되지 않아 금세 알고 지내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이지는 못해도 오가며 마주치게 되고, 별도 관리인이 없어 눈이 올 때면 함께 눈을 치우면서 얼굴을 익히게 된다. 나머지 동 사람들도 직접 인사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안면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동네 와서 처음 같이 식사를 한 분은 계약을 도와준 부동산 사장님의 따뜻한 환영 석식이었다. 자신이 사는 동네로 이사온 것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우리 부부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우리도 답례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지금까지 종종 서로 오가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끼리 가끔 소주를 곁들이는 모임을 갖는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많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주차장에서 혹은 주민 중 한 분의 집에서 모여서 바닷가에 사는 주민 친척이 보내준 석화와 가리비로 소주도 같이하고 함께 삼겹살을 굽기도 한다. 가장 늦게 합류한 우리는 이들에게서 동네 분위기도 듣고 입주한 집과 관련한 여러 얘기도 나눈다.
설날 전 날에는 아래층에 사는 신혼부부가 출산을 했다면서 앞으로 아기 울음 땜에 걱정된다는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걱정 말라며 조그만 선물로 축하를 했다. '솜'이라는 외자의 이쁜 이름을 가진 아기라 한다. 우리가 이사 올 때 14살된 강아지 '송'이 때문에 시끄러울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을 때 걱정말라며 입주를 환영해 주던 부부다. 둘째 아들부부의 손자 재롱에 취해 사는 우리 부부에게는 아래 층의 신혼부부의 출산 소식이 괜히 즐겁고 신난다.
나는 두 아들이 출가하고 내가 은퇴하는 시점에 원하는 곳에서 이웃들과 새로운 삶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서울 도심에서도 함께 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시도들이 있다. 수입까지 함께 하는 원시공산사회를 꿈꾸는 극단적인 공동체도 있지만 동호인끼리 함께 마을을 이루어 사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곳은 가구간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최소한의 연대만으로 삶의 끈을 이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공동체다. 이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8가구가 공동주택을 지어 함께 산다. 70대 노부부에서부터 아기가 있는 신혼부부, 1인가구까지 다양한 성격의 가정들이 한 건물에 모여 살면서 매주 금요일 저녁은 1층 공동 공간에 모여서 한 주간의 피로를 풀며 대화를 하며 지내고 있다. EBS에 1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으로 소개가 되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집, 새맘뜰 – EBS 건축탐구 집 <우린 함께 살기로 했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새맘뜰 공동체 전경
어떤 주거지가 좋은 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을 만족하려면 예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에 만족하기에 그 곳에 살 것이고,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에 또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람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이웃과 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드러내지 않고 혼자 혹은 자기 가족만의 삶을 보호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기준으로 주거생활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혼자 살 기 힘든 동물이다.
사람들의 관계가 점점 더 각박해지고 메말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심지어 친인척 간의 교류마저도 고달픈 생계에 밀려난 현실에서 가까운 이웃 간의 정은 우리 사회의 갈라진 틈을 메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삶을 치유하는 묘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혜택을 누리는 나는 분명 행운아일 것으로 생각하며 좋은 이웃들에게 먼저 좋은 이웃이 되기를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