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자식은 빼고요...
우리 집에 김치냉장고가 없다고 하면 "그래요? 그럼 김치는 어디에 두고 먹나요?"라고 묻는다.
우리 집에서는 냉장고에 김치를 보관하고 '가끔' 꺼내 먹는다.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못한다는 집도 있지만, 우리 집은 김치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김치가 없더라도 식사하는데 큰 불편은 없다. 아내에게 김치냉장고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냉장하는 공간이 커지는 그 만큼 버리는 음식이 더 많아질거라면서...
나는 냉장고를 잘 안들여다 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오래된 음식물을 보게 될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항상 아까와서 버리지 못하고 깊숙히 들어 있는 음식물이 냉장고에 들어있다.
그냥 버리면 될텐데, 그게 잘 안된다.
그것 뿐 아니다. 입주할때는 휑 했던 집 공간이 점점 더 좁혀지고 있다. 베란다 공간은 물론이고 거주 공간까지 계속 침범해 들어온다. 쓰지 않는 가방에서부터 컴퓨터, 청소기, 스팀다리미 등등 채곡채곡 쌓여지고 있다. 아마, 새로 이사가지 않는한 이 상태가 계속 될런지 모르겠다. 그냥 버리지도 못한다. 미리 신고하고 버리는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아직 쓸만한 물건을 그렇게까지 해서 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외국처럼 차고벼룩시장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열리면 처분하기에 좋을 것 같다.
집 안에 있는 필기구를 한번 꺼내서 한 군데 모아 본 적이 있는지?
다른 집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집의 경우는 200자루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 반은 못쓰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평생 그 필기구 중 10%도 못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100자루 이상은 지금 당장 다른 곳에 기증하거나 재활용하도록 하면 좋을텐데, 그게 잘 안된다.
옷가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단언컨데 지금 보유하고 있는 옷 중에서 반 이상은 평생 한 번도 입지 않고 언젠가 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버리거나 기증하면 공간도 넓어지고, 덤으로 푸근한 마음까지 가질 수 있을텐데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부터 책장이 넘쳐나서 읽은 책을 정리해 버리려고 날을 잡아 150여 권을 추려냈다.
추려낸 후 처분하려고 문 입구에 쌓아 놓은지 2개월 정도 지나는 동안 들여다 보는 중에, 어떤 책은 저자(외국인 저자 포함)의 사인을 받은 책이라서 또 어떤 책은 소장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다시 갖다놓고 또 어떤 책은 정이 들어서 처분 못하고 하다보니 다시 50여 권은 슬그머니 들어가고 100여 권만 처분했다.
그렇게만 해도 체한 것이 내려가듯이 기분이 좋다. 사실 다시 갖다놓은 50여 권의 책도 다시 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정리를 못하는 것은 자기 물건을 잘 통제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이번에 정리한 책 중에는 새 책도 제법 있는데, 앞으로 읽을 계획이 없는 책이어서 처분한 것도 있지만 이미 샀던 책인 줄 모르고 또 구입한 것을 정리하다 보니 알게되어 처분한 책들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의약품이나 각종 비품 들중에는 바로 눈 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통제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다.
이 모든 현상은 너무 많은 자원을 가진 탓이다.
자원이 너무 풍부하다 보니,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또 사서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쌓고 있으니 답답하다.
찻잔과 책 몇 권...
이것이 법정스님이 이 세상에서 소유한 전부였다고 한다.
이 마저도 부담스러워 하시다가 입적하시면 모두 두고 떠나셨다고 한다.
법정스님처럼 살기야 힘들겠지만, 잘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갖는 것도 어쩌면 의식성장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점점 더 잘 버리는 삶! 그리고 꼭 필요한 것 만 갖는 삶! 마지막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도 비슷하다. 살펴보면 왜 해야하는 지도 모르게 관성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통제를 못해서 그렇다. 그렇게 해서는 급한 일만 하게 되고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냥 하루 하루 사는데 급급한 일만 하게 된다.
의식성장은 더 멀어진다.
잘 버리고 잘 정리하는 삶, 성장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