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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ul 08. 2016

어설픈 농촌생각

농촌 만이라도 자본원리가 피해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농촌에 대한 기억은 방학동안이면 늘 가있었던 외가에 대한 기억이 전부다.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농촌은 아름다운 기억도 있지만 불편했던 기억도 섞여있다. 불편한 부분은 주로 씻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쪽이었는데, 나는 겁이 많아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늘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씻는 일도 추운 한 겨울 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에서 덥혀놓은 물로 간단히 세수를 하는 것 조차도 쉽지 않는 불편한 곳이 농촌이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기억은 포근하고 정겨운 곳으로 기억되어 있다.  도시에서 학교와 집, 만화방, 구슬치기 등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가 농촌에서의 생활은 다양한 흥미와 경험을 하게한 소중한 곳이었다. 연못에서 얼음지치기, 외삼촌들과 산과 들, 그리고 과수원을 다니며 사냥하기, 뜰채로 물고기잡기, 토끼나 닭 그리고 소를 기르는 모습들, 논밭 김매기, 곤충채집, 심야에 무서리하기를 비롯해서 당시 유행하는 고고댄스, 화투놀이 등 도시에서는 접하기 힘든 다양한 놀이와 재미를 마음 껏 누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농촌이었다. 가끔은 큰 물난리가 나서 며칠씩 마을이 잠기고 강을 건널때 기억도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5일에 한번 씩 열렸던 장날이 오면 그 날은 정말 신나는 날이었다. 당시 외할머니께서는 장터에서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간이 주막을 설치해서 막걸리와 국수, 국밥 등을 파셨는데 그 당시 국밥, 국수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가게에 들러 오래간만에 달콤한 것들을 군것질을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장이 서지 않는 평일에는 종일 주막에서 노름(도박)을 하시다가 잔뜩 취하셔서 저녁에 돌아 오셨고 새벽이면 연못에 낚시하러 가셨다가 우리가 일어날 때 쯤이면 잡으신 물고기를 우물가에 두고서는 다시 주막으로 가버리셨다. 나는 매일 아침 흰배를 드러낸 물고기를 손질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솔찮았다. 가끔은 너무 취하셔서 댁에 돌아오지 못해 외삼촌들이 모시고 오기도 했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나를 유난히 찾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는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미소로만 기억되어 있다.


이렇게 불편함과 정겨움이 섞여있는 나의 농촌이 현대화 되면서 이제 불편함은 사라지고 정겨움만 남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흙이 좋아지고 산과 들의 숲과 나무들이 더욱 좋아진다. 이 마음은 우리들의 삶이 시작된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본성일 수도 있겠다. 어찌보면 각박한 삶 속에서 뒤돌아 볼 틈 없이 달려오다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급격한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지금의 그 농촌은 과거의 그 농촌과는 다른 농촌이 되어 버렸다. 현대식 건물과 공장이 들어오고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농법이 들어오면서 농촌도 서서히 자본의 놀이터로 바뀌었다. 지금의 농촌은 우리 기억 속에 있는 그런 농촌이 아니라 도시를 닮고 싶은 농촌이 된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야하고 우리가 숨쉬는 근원이 되어 주었으면 했던 농촌도  효율화와 돈이라는 자본주의 관점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자본주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일하지 않은 부의 댓가가 점점 더 커지는데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 상위 1% 소득자의 근로소득비율은 50% 안되는 반면에 캐나다는 67%, 일본은 80%가 넘는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에는 일하지 않고 이자와 같은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과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생산성은 우리의 삶은 윤택하게 만들어 준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더 많은 사람이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다. 과거는 한 사람이 벌면 되었는데, 이제는 네 명이 벌어야 삶을 충족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일을 하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부유층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들은 근로의 수고없이 기존 가진 부에서 나온 것으로 네 사람이 모두 투입되어 일하는 과실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농촌이야말로 한사람 한사람의 땀으로 만들어진 근로의 댓가가 진솔하게 반영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 근로의 댓가가 정직하게 반영되어 그 만한 소득으로도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침탈한 농촌에서 마저도 그 노동의 댓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농부의 일년 내내 흘린 땀과 노력과 같은 근로량 보다는 수요예측을 잘하고 유통업자와의 결탁을 잘하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댓가가 좌우될 뿐 아니라, 실제 더 큰 과실은 일하지 않고 그 생산물을 유통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또한, 생산성과 효율성만 강조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먹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식탁에 오르는지 관심이 없고 오직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자본 창출에만 몰입하는 동안 우리 생명의 본원이 혼탁해지고 있지만 농촌에 드리워진 자본시스템은 그칠 줄 모르고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와 건강한 자본주의의 유지는 농어민들의 노동이 건강하게 보상될 때 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농촌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도시민과 직접 연결하고, 더 많은 개개인들이 직접 수고하여 직접 먹거리를 만들어 먹는 노력이 자본주의 논리만이 판치는 답답한 세상에서도 희망의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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