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첫눈 Apr 18. 2018

달빛이 밝네요.

당신도, 당신과의 추억도 놓아드립니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오늘 밤,


우리 집 앞, 강에 있는

당신과 건넜던 돌다리가 생각나요.

그 날도 이렇게 달빛으로 세상이 환했고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예쁘게 수놓아졌었죠.


바람은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조그마한 파동들을 일으킬만큼 세차면서도 차가웠어요.

차가운 바람에 내 손은 냉기로 뒤덮여 시렵다 못해 아려왔지만,

그 추운 밤에도 내 손을 잡아주는 따스한 당신의 손이 있었기에 괜찮았어요.

우리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서로의 손가락을 마주보고 끼운채,

 발걸음을 맞추어가며 강물 옆 산책로를 걸었죠.

질거리는 이 마음을 숨길수가 없어

나도 모르게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다하고

당신의 모습만을 바라보았어요.

그때를 회상하면, 정말 그 모든 풍경들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했다고

지금도 난 생각해요.


그렇게 당신과 나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당신은 말했죠.

저기 강에 오리가 헤엄친다고.

나는 거짓말하지말라며 그제서야 강물쪽을 바라보았어요.


별빛만큼이나 밝은 불빛들,

그 불빛들이 강물을 비춰주었고

강물은 그 불빛들을 비춰주어

당신에게서 나의 시선을 빼앗아 줄 광경들이 만들어졌죠.

그 때문에 나는 오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말했고,

당신은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강물 위 풀숲 속을 가리켰어요.

 금방이라도 푹 꺾일것만 같은 작은 풀숲 속에는

정말 청록색의 머리와 군데군데 갈색이 섞여진 몸통을 가지고 있는

 청둥오리가 조용히 떠있더군요.

나는 신기한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싶어

강물 가까이 다가갔죠.


그 순간 잔잔한 물결을 그리며 헤엄치던 오리가

날개를 파닥이며 낮게 날아올라 저 멀리 가버렸어요.

나에게 도망치듯.

아쉬운 표정으로 당신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맙소사, 나는 누군가의 눈빛만으로도

그렇게까지 가슴떨릴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어요.


온갖 사랑을 담아 나를 어여삐 바라봐주던 당신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두 손을 맞잡은 채 걷다가

당신은 띄엄띄엄 놓여있는 돌다리를 발견하고서

가볍게 돌 위에 올라섰죠.

하나, 둘.


나는 발을 잘못 디뎌 강물에 빠질것만 같은 우스운 걱정을 하였고,

조금 망설이던 차였어요.

그런 나에게 당신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주었어요.


 그 손을 잡는 순간,

나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져버렸고 황홀함만이 남아있게 되었어요.


당신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걸으며 들었던

돌다리 밑에서 들려오던 잔잔한 물결소리,


그것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오늘도 그 날처럼 달이 참 밝네요.

오늘은 달이, 구름 뒤에 살짝 숨어있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제는 이 돌다리를 당신없이 걸을 수 있겠어요.

이 옆에 있는 가로등이 밝아서 아마,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니 몇번이고 반복해서 되뇌이던 이 추억과 함께

당신은 이제, 나에게서 떠나가세요.


그 청둥오리를 놓아줬듯, 당신도 놓아드릴게요.

더 이상은 나에게 도망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는 더 이상 그때의 그 손길을, 눈빛을 바랄 순 없겠죠.


많이 황홀했어요. 덕분에.

매 순간마다 나의 마음을 울려주었던 당신,

모든 순간이 감사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꺾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