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첫눈 Jul 28. 2019

낙원 속에 잠드신 당신을 위한 글 1

당신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리며

"그냥 빨리 죽어버려야 편할 텐데.."
외할머니댁에 방문할 때마다

외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두고 하신 말씀이셨다.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엄마 역시도 그것에 동의하며

그래야 본인이 더 편하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다리가 편찮으셔 잘 걷지도 못하시던 할아버지는

가만히 계시면 몸에 가시가 돋는지 기어이 일어나셔서 밭으로 나가든 논으로 나가든 일을 하시고야 말았는데, 그때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서 할머니와 엄마는

속이 터진다는 듯 그만 가만히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며 할아버지를 나무라셨다.

귀도 좋지 않아 그 나무라는 소리마저 잘 듣지 못하신 할아버지께서는 '뭐라고?'를 연발하시며

도리어 할머니께 화를 내시곤 하셨다.

그렇게 두 분은 항상 투닥투닥 다툼을 하셨다.


'영감탱이 나가 죽어라'는 그 말씀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본인이 홀로 남을 것보다 할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을 더 걱정하는 마음에

하신 소리라는 걸 알기에 다투시는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하고 조용한 가족보다야

더 정겨워 보이기에 웃음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할아버지 끼니를

꼭 챙겨주시던 할머니셨으니.

설날,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이게 되었고,

오랜만에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지난 근황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께서 검은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을 가져와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며 잘 나왔느냐고 여쭤보셨다.

우리는 그렇다고 말씀드렸고

어딘가 어두운 사진의 분위기로 인해

그 사진이 어떠한 사진인지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되기 전

미리 준비한 사진이라 하셨고

나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아직 멀었다며 조금 큰 소리를 내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정말 아직 먼 얘기이길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대략 4개월 후. 나는 검은 상복을 입고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있게 되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밖에 바라볼 수 없다는 게.


위독하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1년 전에도, 몇 개월 전에도, 몇 주전에도, 며칠 전에도.


그때마다 잘 넘기시기에,

내가 뵈러 갔을 때마다 웃으며 날 바라보셨기에.

그래서 며칠 전 위독하시단 소리를 들었을 때도

이번에도 잘 넘기실 것이라고

또 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일했다.

할아버지께서 곁을 떠나실리 없다고,

아직은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그리 자신했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렇게 짙지는 않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

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서 그리 어리석게 생각했는지.

이 며칠 전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니

할머니 생신 겸 통화 한 번 드리고서

두 분 목소리라도 들으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지만 한 번 받지 않으셨다고

나중에 다시 전화드리면 되겠지 생각했던 내가,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날

먼 타지에서 고작 아르바이트 하나 한다고

마지막까지 얼굴 한 번 뵙지 못했던 내가 참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통화 한 번이라도,

얼굴 한 번이라도 뵐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죄송스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나 자신이 원망스럽지 않았을 텐데.


허무하고도 허무하구나.

사람이 이 세상을 등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상복을 입고서 할아버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진 속 할아버지께서는 새까만 머리를 하고서

이리도 건강해 보이시는데.

그렇게 멍하니 할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마지막 얼굴 한 번 못 뵈어서 죄송합니다.

이제껏 많이 힘드셨으니... 그곳에선 부디 편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마지막을 뵙지 못했기에 못한 말들이 참 많았다.


모두 말하려고 했었다.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손녀 얼굴 한 번 못 보고 가버리신 거냐고.

조금만 더 버텨주시지 그랬느냐고.

보고 싶다고. 잘해드린 게 없어 많이 죄송하다고.

많이 힘드셨냐고.


이젠 평온해지셨느냐고...


하지만 몇 마디 말을 꺼내자 목이 막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말을 대신하여 내 눈물들이 하나 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감정들이 쏟아지고 난 후,

그제야 현실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로 끝이구나.

정말로 보내드려야 하는 거구나.


다신 뵐 수 없구나.

나를 바라보며 본인의 아픈 몸조차 다 잊고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그 얼굴조차도.


현실 인지가 되고 나니

울음소리가 기어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나보다 엄마가 더 힘드실 텐데, 할머니께서 더 아프실 텐데, 내가 어른스레 위로해드려야 하는데.  


울고 싶지 않았지만,

어엿하게 엄마를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 탓에

옆에 있던 엄마를 또다시 울려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울지 말라고, 네가 울면

할아버지께서 편히 올라가시지 못하지 않느냐며

나를 나무라셨다.


정작 본인의 눈물은 차마 훔치지 못한 채.



나는 어느새 나보다 더 작아져버린 엄마를

품 속에 안아주었고


우리 둘은 울음소리를 삼켜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