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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눈 Dec 13. 2019

이별 후, 어느 날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그의 잔상들.

11월 ××일 수요일. 의미 없는 첫눈이 내린 다음 날.
그녀는, 그가 이제는 그녀의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온갖 드라마나 웹툰들을 찾아보며

잠시 현실을 잊는다.

그녀의 시린 마음 또한 감춘 채로.


그를 보내고 나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의 원래 일상을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자신이 오만했음을 느낀 채.

그라는 존재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도 그녀는

온 세상이 무너진 마냥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무기력하게 천장만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먹고 싶지가 않았고

그저 그의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해버렸을 뿐이었다.


그가 사라진 후의 그녀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버렸다.



침묵 속에 가만히 눈만 꿈뻑이던 그녀.

하루 종일 목으로 넘긴 것은 그녀 자신의 침뿐이었다.

그녀의 말라비틀어진 입 안을 충분히 적시기엔  

아주 부족한 소량의.


한참 뒤, 본인의 목이 타는 것을 인지하였는지

그녀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트레이닝복들을 주워 입고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편의점.

오른쪽 유리문을 밀고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노선을 정해

음료들이 진열되어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고민되어 잠시 그 앞에 서성였다.

그 와중에도 그가 좋아하던 음료들이 눈에 밟히던 그녀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손을 뻗었고, 계산을 마친 뒤

문을 열고 나와 캔 음료를 땄다.


항상 이 음료를 대신 따주던 그의 곱던 손이

잔상처럼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음료를 들이켰다.

그 방울들이 목으로 넘겨지기도 전에

눈물이 새어 나와, 차마 그 음료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 음료를 꾸역꾸역 넘기며 집에 가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와 같이 걷던 길이 아니었음에도

그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무너져 소리 내어 오열하고 말았다.


그렇게 별것이 아닌 것에도 그의 생각이 나는데 그녀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생활로

다시 멀쩡히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는 도대체 언제쯤 너 없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녀가 괜찮아진다면 그땐, 마음이 정말로 무뎌진 것이 아니라 무뎌진 척하는 것이겠지.

그녀의 불면증이 심해진다.

언젠가 그와 함께 잠든 그 날 꾸었던,

그를 품에서 내보내야만 했던 그 서글픈 마음.


그것이 지금 그녀의 마음을 예견했던 것만 같다.



술을 마시고 그를 잊고서

잠시라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면 좋겠으련만,

술을 마시면 더 생각날 그일걸 알기에

술조차 차마 입에 대지 못한다.


그녀의 생각보다 그라는 존재는

그녀의 세상을 꽤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되찾기는커녕

가끔씩 그녀를 덮쳐오는 그의 잔상들에

아직도 허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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