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현실은 잠시만 잊고 싶어. 너와 함께.
그 밤이 지나가면
그저 하룻밤 추억, 아니 어딘가 한 구석에 처박아두다
가끔 떠올릴 기억 따위로 남을 사람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너.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매달리는 네 모습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다음에 보자는 의미 없는 약속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너와 가벼운 인사치레를 나누고서 집에 돌아온 후
연락을 그만두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떠오르는
너의 그 티끌 한 점 없는 웃음이 한 번 더 보고 싶어 져
나를 찾는 너를 심심하다는 핑계로
다시 나에게 한 발짝 다가오게 했다.
망설임 없이 넌 나에게 다가섰고,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아이같이 맑고 가식 없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숨김없이
너의 온 마음을, 감정을 표현하였지.
혹여 내가 부담이라도 느낄까
나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주겠다는 말을 더하며.
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나 말로써는 형태 없이 꺼낼 수 있는 그런,
자신조차 본인의 한 치 앞을 모르는 데도
쉽게 할 수 있는 실없는 맹세.
게다가 너는 너무 어렸고
제대로 된 누군가를 만나본적도 없기에,
내가 운명이라고 쉽게 생각된 게 분명했다.
그저 네 생일에 우리가 마주하고
처음부터 나에게 마음이 갔다는 그 간단한 이유로.
정작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나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서
사랑을 속삭이는 너에게.
그만 너를 놓아버려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다짐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런들
처음 볼 때부터 날 신경 쓰이게 하던
너의 그 미소만큼은 놓고 싶지 않더라.
넌 미래까지 함께할 정도로는 어른스럽지 않고, 믿음직스럽지도 않다.
너의 그 어린 마음이 금방 식어버릴 거란 것도 알지.
그래서 이 찰나 같은 불장난에 흔들려 버리면 안 된다는 걸,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 아는데도 왜 난 널 놓고 싶지 않은 걸까.
왜 흔들리는 마음에 내 모든 걸 내어보고 싶은 걸까.
너는 내가 먼저 찾지 않아도 나를 항상 찾는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달려와주지.
밀쳐내도 자꾸만 내 세상으로 들어오려 하고
나에 대한 네 진심을 달콤하게 속삭인다.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위해 모든 걸 내어주려 하고 내가 뭘 하든 예뻐해 줘.
네 마음 숨기지도 않고 재지도 않아.
어리니까 가능한 거겠지 하면서도 그런 네가 싫지가 않아.
날 함부로 대했던 지난 인연들, 또 지금의 연인.
그들은 모두 틀렸다고 자꾸만 네가 온몸으로 알려줘. 행복이란 건 이런 거라고 자꾸만 알려준다고.
그럼에도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너를 정말로 밀쳐내려 했을 때,
나만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
못됐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 무너진 듯 울음을 쏟아내는 너를 보며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날 붙잡는 네 손이 나도 모르게 사랑스럽다 느껴져
그냥 너에게 안겨버리고 말았지.
이제는 멈출 수 없단 걸, 아니 멈추고 싶지 않단 걸 인정하고서.
그 사람조차도 챙겨주지 않던 내 생일.
혼자서 씁쓸한 마음을 안고 잠들어버리려던 나를 찾아와
태어나줘서 고맙다던 너.
그리고 나만을 향해 지어 주던 그 아름다운 웃음,
계속해서 보고 싶어.
누구도 믿을 수 없던 내 마음을,
그 사람으로 인해 다 망가져버린 내 마음을,
속은 척 다시 한번 너에게 맡겨봐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