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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Oct 29. 2015

살 집이 정해졌다

자다가 떡이 생긴다더니

집을 정하는 것, 차를 정하는 것 모든 것이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남편과 나의 방향이 철저히 다른 상황이어서, 모든 것을 좋게만 보는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좋은 삶을 살 것이라 하지만 인생에서 그렇게 훌륭한 절충은 많이 일어나는 행운이 아니다. 거의 한쪽의 패배일 뿐이지.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던 며칠 전, 남편에게 제안이 토스되었다. 이 사람 회사에서는 유학생이 몇 년간 없었기 때문에 어떤 선발대도 없어 기대할 수 없었던 '우리가 살던 걸 넘겨줄게' 제안이 같은 지역으로 가는 공무원 사이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남편에게서 카톡이 오자마자, 나는 그 집이 어떤 집이냐 동네가 어떠냐 학교는 어떠냐 묻지도 않았다. "여보! 받는다고 해! 그냥 받는다고 해!!" 


미국생활에서 꼭 누리고 싶었던 단독주택인지 여부도 필요없었다. 싸면서도 나를 초라하게 하지 않을 가구와 가전을 찾아 온갖 중고가게와 이케아를 누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런 것을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다. 단연코, 나는 아니다. 갖고 싶은 물건과 내가 가진 재화의 차이에서는 항상 절망만 느낄 뿐이다. 아니면 무조건 싸게 사야 성공이라고 생각하거나.


얘기가 샜지만 결국 우린 그 집과 세간, 자동차를 한꺼번에 인수하는 조건으로 그 가족과 딜을 마쳤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반려견 입주 가능. 초등학교는 걸어갈 수 있고 중학교는 스쿨버스가 아파트 입구에 선다.

아파트라고는 해도 한국에 있는 아파트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어서 놀랐다. 잔디가 많고, 역시 땅이 풍족한 동네답게 야트막하다. 미국에서 살다 온 척척박사 C 언니의 말에 따르면, 운동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클럽하우스와 수영장은 미국 아파트의 거의 기본 옵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촌스러워 위축될 것 같아;;)

물려받는 가구는 역시 1년간 거주하는 가족이 쓴 것답게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와 아주 작은 텔레비전, 작은 식탁 등등이지만 약 100만원에 그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러 갈 필요도 없고, 그 운반이나 조립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3인 가족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담하다. 차도 소형차인데 상당히 연식이 새 것이라(2012년형) 고장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SUV를 원했던 남편은 약간 서운하겠지만, 캠핑 용구를 살 생각이 없는 이상 나는 전혀 불만 없다.


요 앙증맞은 쓰리디 평면도처럼 다 갖춰놓고 살지는 못하겠지만, 바깥에는 개를 산책시킬 수 있는 뜰도 있고 욕조도 있으니 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탁기가 없어서 공용 세탁실을 써야 하는 점인데, 남편은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집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14년을 살고도 날 잘 모르는구나. 나는 며칠에 한 번 옷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불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쇼, 핑! 헬에서 구조받는다면 말이지!!!


생각보다 훨씬 기준을 낮춘 집세를 물게 되어, 생활비에 대한 압박이 줄어든 것도 좋지만 사실은 집이 좁아 어느 분이 미국에 오시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못하시겠구나 이 점이 마음에 드는 것도 사실.


남편의 회사 사람들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다는 점도 사실 난 좋다. 돈과 계약에 관한 세부 사항을 남편이 조율하고 있다. 돈은 원화로 송금하는 날의 환율을 따라서, 차값은 중고차 마켓에서 견적을 내서 그대로 지불하기로 했다. '세간 인수'의 행복감 때문에 특별히 더 흥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단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유틸리티(관리비)가 200불 정도로 상당히 비싸다는 점이다. 케이블티비와 인터넷이 포함되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괜찮아. ㅠ_ㅠ

올해의 마지막은 이 집에서 맞게 된다는 것을 지금도 믿기는 힘들지만, 집이 결정되면서 비행기 날짜도 의뢰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다. 이제 남은 행운은 계약 날짜와 가장 차이가 없는 날짜의 티켓을 획득하는 것이다. 19일부터 같은 아파트에서 여행가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중개를 해놓은 상황이라 19일 이후에만 가면 길에서 울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빨리 '내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


※미국에서 아파트 살아보신 분들은 누구든지 편하게 참견해주세요. 전 자타공인 미국촌년 예약자입니다. (브런치에 댓글 기능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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