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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Nov 16. 2015

미국 비자님과 나

갑질이 영어로 뭐요?

그저께 시민들을 버스벽에 가두고 최루액으로 죽이려 했던 범죄현장 근처에 위대한 천조국의 대사관이 계시나니, 대한민국의 비천한 식민지인들은 줄을 서서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린다. 남편은 비자 신청을 위해서 나의 부모님의 생년월일과 본적까지 물어야 했고, 오늘 아침 가장 이른 시간으로 비자 인터뷰를 예약하느라 조금 더 늙었다.


기분상인지 매캐한 냄새가 감도는 광화문 거리에 8시에 도착하자 우리 앞에는 약 10명 정도가 대기 중이었다. 15분부터 대사관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신청등록증과 여권을 검사받고 나면 휴대폰과 전자기기를 제출하고 스캔을 통과해서 2층으로 올라간다. 여권 커버를 벗기고 서류 체클 한 번 더 하고 나서 줄은 두 개로 구분되었다. (아마도 동반자가 있는 비자와 아닌 비자인 듯) 어떤 검사과정에서도 미소 한 점 없는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사관에서 일하기 위해선 상당히 엘리트여야 할 거고, 그들은 미국에 가기 위해 수십만원을 내고 굽신거리며 검사 받으러 온 우리가 별로로 보였을 것 같다. 줄을 서서 창구 앞에 도착했을 때 열 손가락의 지문을 "힘있게" 눌러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은 때인데 권태감이 흘러넘치는 직원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일할 때 저런 표정일까?


드디어 비자 인터뷰 번호표가 나와서 역시 창구 앞에서 기다렸다. 이번엔 의자가 있어서 무려 앉을 수가 있었다. 푸드코트처럼 번호가 나오면 미국 영사가 기다리는 창구로 가면 되고, dependant 신분인 나는 남편 옆에 붕어똥처럼 따라가면 됐다. 전혀 프라이빗하지 않은 인터뷰 풍경에 남편은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우리는 풍채가 좋은 아저씨 앞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여기서 내가 대형사고를 쳤다. 그 사람이 미국에 형제나 사촌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아주 태평하게 "I have a cousin in Austin."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순간 남편이 매우 강렬하게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가 서류 작성 때 없다고 적었다는 사실을 내가 우째 알았겠냐고! 영사님은 그가 영주권자인지를 다시 물었고, 나는 서둘러 "I don't know." 뒤에 "I will not visit him."을 덧붙였다. 구차하고 처절하게. 남편은 회사에서 가는 교육이고 회사에서 비용을 댄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는 뭐다 등등의 질문에 답을 했고, 영사는 우리 신청서류를 갈 때 반드시 지참할 것을 당부하고 서류에 두 가지 스탬프를 찍고 서명한 후에 나중에 보내준다는 말과 함께 우리 여권을 챙겼다.


나는 내심 내가 한 실수 때문에 미국에 못 가게 된 건가 쫄아서 살짝 검색을 해보니, 비자 인터뷰 결과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나오는 거고 색깔 있는 종이와 여권을 받으면 거절이라고 한다.


모든 과정은 55분 만에 끝났다. 우리 뒤로 하는 사람들은 족히 한 시간 반은 걸리겠더라. 오, 아메리카 가기 힘드네여? 남대문시장에서 가메골 만두 먹고 안경 새로 맞추고 호로요이 두 캔과 아롱이 미국에서 쓸 영어 이름 목걸이, 비행기에서 물 먹일 물통을 사고 차 한 잔 마시며 미국에서 탈 차(car)값의 10%를 떨면서 송금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서류 다 채우느라 남편은 욕봤고 혹시나 해서 준비한 재직증명서는 전혀 필요없었다.


제이 원 비자와 그의 떨거지 제이 투 비자는 며칠 후에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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