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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Dec 26. 2015

기묘한 체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종교 시설 이용

남편이 이쪽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처음에 구한 임시숙소는 우리가 살 아파트 단지의 이웃이 연말 휴가를 떠나서 빈 집이 될 아파트였다. 그런데 그 가족이 여행을 가지 않게 되면서 숙소 계획이 틀어졌고 그 숙소를 주선했던 우리에게 집을 물려줄 분께서 교회의 선교센터에 묵을 수 있게 새로 주선해주셨다. 다른 건 다 상관없고 하루에 30불이라는 고마운 가격이라 감사하게 받아들였고, 공항에서 차를 타고 긴 비행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왔더니...


집이 너무....


좋았다.


하루 30불로 상상할 수 있는 허름한 이층침대라든지, 미묘하고 낡은 공동주방이라든지 그런 게 아니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훌륭한 단독주택은 잔디밭 위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가재도구와 모든 생활비품이 마련되어 있었고,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이 저택(한국의 서민의 눈으로는 저택이다)의 마스터베드룸이었다. 킹사이즈 베드에 딸린 드레스룸, 거품 욕조, 세면기 두 개, 샤워부스는 그야말로 웬만한 호텔보다 나았다. 심지어 아들에게는 지하에 있는 멋진 방을 따로 마련해줬다.


그러나 그야말로 황송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이 숙소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대원칙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제일 먼저, 우리보다도 여행에 지쳐 너덜너덜해진 개가 이슈가 되었다. 우리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목사 사모님은 아롱이를 보고는 매우 곤란해하셨다. 이 멋진 곳에는 개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직자(관계자)로소 외국으로 건너와 갈 곳 없는 가족을 쫓아낼 수도 없는 처지라 매우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셔야 했다. 이 선교센터는 한국의 교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고, (오, 한국 교회의 재력이란!!) 원래 독실한 신자들을 위한 숙소였다. 신자도 아니고 개를 데려온 우리가 얼마나 염려스러웠을까! 티끌 하나 없이 없이 잘 정돈된 이 장소를 이용하는 규칙은 A4 한 장 빽빽하게 가득 적혀 있어서 다 외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소지하게 해주심) 그 규칙에는 가구에 젖은 수건이나 옷을 걸치지 말 것과 컵을 가구에 놓을 때에는 반드시 코스터를 사용할 것, 주방에서 조리를 할 때에는 반드시 양키캔들을 켤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개와 우리 가족은 긴장에 가득찬 열흘을 시작했다. 다음 날에는 삼남매를 둔 '독실한' 신앙인 가족이 입국했고, 그들은 우리와 달리 우리와 딴판으로 매우 편안한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가족의 마나님은 우리가 비신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전도의 기회' 냄새를 기뻐하시며 달려드는 바람에 초면인 상황에도 썩은 표정을 짓게 만들고 말았다.


여기서 지낸 나흘 동안 그럭저럭 다른 거주자들과도 덜 어색해졌지만 나는 성경 말씀이 구석구석 장식된 이 집에서 어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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