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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Dec 29. 2015

안녕히 가세요

일주일 간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집을 물려주는 남 선생님 가족이 오늘 떠났다. 떠나기 직전에 집에 가서 배웅을 했지만, 짐 싸는 거나 뭐나 하여간 별로 도움이 되진 못했다. 꽤나 많이 버리고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짐이 늘어난 것을 보니, 정말 '하나도' 사지 않아야 한국 들어갈 때 덜 힘들겠구나 싶더라. 남 선생님의 부인 김 XX 씨는 떠나기 전에 나를 포옹해주었다. 이 시골 동네에 한국 사람들은 오지게 많아서(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점점 늘어나는 모양새) 앞집도 한국 가족, 윗집도 한국 가족이다. 정신 없는 이별의 와중에 윗집에 산다는 한국 주부는 집까지 배달해준다는 한국 식료품점을 홍보해주셨다. 분명히 내가 막막할 거라고 생각해서 뭐든지 가르쳐주고 싶은 호의일 텐데도, 나는 일단 이곳에서 한국사람에게 제일 경계심을 품게 된다. 번호와 카톡을 트면서도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일었다. '괜찮아요, 한국 음식을 못 먹어서 발작을 일으키진 않을 것 같아요!'


쓰던 책들과 학사일정, 벽에 붙은 지도와 메모까지 그대로 있다 보니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 상황이다. 미국 아파트는 최근 지어진 '신식'이 아니고서는 천장에 전체 조명이 없다고 한다. 김 XX 씨는 예전에 1년 동안 지냈던 영국의 집에 비하면 매우 밝다며 웃었지만 미국 사람들의 저녁은 정말 어둡다. 스탠드로 천장등을 대신하다 보니 침침하고 금방이라도 자빠져 자야 할 같은 것이다. 새삼 지금 임시로 머무는 저택이 고급인 걸 알겠다. (이 집은 방마다 천장등이 달려 있다)


한국인이다 보니 양탄자를 깔아놓았지만 현관에서 별도의 매트를 깔고 신발을 벗는 생활을 한다. 회사 후배가 선물한 가족용 슬리퍼는 어쩌면 사용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여기까지 싸서 가져왔는데 ㅠ_ㅠ) 원래 전 거주자가 나가고 나면 페인트칠과 카펫 청소를 해주는 건데, 페인트칠을 하려면 이케아 산 침대 프레임을 옮겨야 한다. 이 프레임이 조립이 매우 힘들었고, 해체하면 재조립해야 하고 옮기다가 틀어질 수도 있다길래 그냥 생략하기로 했다. 고작 1년 살 건데 뭐. 카펫 청소는 내일이고 청소를 마친 후 좀 마르고 나면 다음 날, 원래 예정보다 하루 일찍 우리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매일 너무 비가 많이 와서 마음이 스산하다.


아직도 내겐 안양에 있는 내 진짜 집만 우리집 같고

사실은 벌써 가고 싶어서 괴롭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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