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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04. 2016

잘 먹고 지냅니다

켄터키주 삼시세끼

우리 집으로 들어온 후 가장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이제 냉장고 걱정이나 운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장을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장을 보는 장소는 sam's, 월마트, 크로거, 프레시마켓 등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달라지고 있다. 아직 서울마켓이나 동양마켓이라는 한국 식품 매장은 가보지 않았다.


식구가 적어서 항상 적은 양으로 장을 봤던 내게 샘즈는 약간 버겁다. 회원제 창고형 매장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번들이 크다. 가장 다양한 식품이 있는 곳은 크로거고, 생활용품이나 의류 쪽이 강한 것은 월마트. 하지만 집안에서 종종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필요할 때 단 하나 내가 원하는 매장은 다이소뿐이건만.


미국에서도 한국인들은 징하게 한국식품을 고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 다른 가족들은 입국하자마자 다음 날 바로 한국 식품 매장에 쇼핑을 갔다. 한국이 벌써 그리워져서 그런가. 나는 집밥의 향수는 그다지 느끼지 않고 있다. 내가 그리운 건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내 집앞 동네의 갖가지 장소들이고, 팁을 안 주고도 맘 편하게 저렴하게 가서 한 끼 때울 수 있는 식당들이다. (잘 있니, 홍콩반점...)


어쨌든 완전히 아메리카식으로 베이컨과 에그, 약간의 야채, 토스트를 먹거나 시리얼을 먹는 아침이 많았다. 그리고 장을 볼 때 한국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싼 소고기 덩어리를 사다가 스테이크도 두세 번 했던 것 같다. 시즈닝을 하고 후라이팬에 겉면만 익혀 먹으면 내가 최현석 쉐프는 아닐지라도 망하지는 않는다.

아웃백의 작은 사이즈 스테이크를 두 개 정도 합친 대국적인 사이즈로 호쾌하게 굽는다. 그러면 이런 무식한 플레이팅이 등장.



어젠 월마트에서 뼈가 조금 붙어 있는 돼지를 샀다. 미씨유에스에이에서 검색해서 미국에서 산 첫 돼지는 맨 먼저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마침 배달하는 한국 식품 마켓에서 쌀을 살 때 같이 주문했던 애호박으로 호박전, 고추장찌개, 된장찌개에 알뜰하게 썼다. 그리고 간장으로 갈비 양념을 해서 구이를 만들었다. 갈비 양념을 할 때 좀 달라진 걸 느끼긴 했다. 일단 간장(전 주인이 남기고 간 것)을 지나치게 많이 쓸까 봐 긴장하며 만들었다. 다시 사러 나가기 귀찮으니까. ㅎㅎ 크로거에서는 두부도 살 수 있다고 하던데, 항상 느끼지만 난 검색력이 거지 같다.


팁이 부담스럽고 차도 타야 하고 해서 장을 보느라 밖에서 밥 때를 맞지 않는 이상 집에서 요리를 한다.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길면 2시간이 꼬박, 짧으면 1시간이 걸린다. 식기세척기는 그 안에 보관하고 있는 그릇을 어디에 옮겨야 할지도 모르고 사용법도 제대로 몰라서 쓰지 않는다. 세월아네월아 그릇을 씻으며 이 쓸데없이 남아도는 시간이 흘러가라~ 하고 있다.


미국에 온 후로 체중도 재지 않고 햄버거도 처묵처묵해서 분명 체형도 미국화되고 있을 조짐이다. 지금 냉장고에 있는 고기들이 아작날 때까지는 새로 장을 보지 않는 게 목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단 사러 가면 돈이 깨지더라.


남편은 앞집의 아저씨가 차 한잔 하자고 불러내서 나갔다. 어렸을 땐 여자가 말이 많고 남자가 과묵하다는 말이 사실인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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