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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06. 2016

His first day in school

겁에 질린 네 모습 살짝 쌤통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어젯밤에 아빠가 동네 한국 학부형들에게 수집한 정보에 따라, 개학인 오늘 일단 아이가 다닐 중학교에 가서 절차를 확인받고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청에 무조건 영어 능력 검사를 받으러 가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춥고 싸락눈이 내렸다. 이 도시의 첫눈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부모님들 사이를 뚫고 학교에 들어갔다. 멋들어진 말 모형이 있는 사무실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러 온 청년을 만났다. 정말 좋은 학교라며 눈이 반짝거리는 귀여운 남자였다. 근무시간이 시작되자 그는 다른 선생님을 따라갔고, 우린 미드에서 많이 보는 스타일의 할머니 교장에게서 따뜻한 환영을 받은 후 카운셀링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개학날 카운셀링 가이딩 교사는 바빠 죽는 중이었다. 우리 같은 전학생 가족에다가 또 자기 볼일을 보러 온 학생들... 나름 열흘 가까운 윈터 브레이크 직후의 선생님은 격무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매우 친절하게 우리 가족을 대해주셨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각종 건강 관련 서식을 내밀자 매우 좋아하셨다. 완벽하다면서. 단 하나 빠진 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영어 능력 테스트였다. (그놈의 휴가 때문에...) 그녀는 우리에게 작성할 서식을 한아름 안겨준 후에, 별로 멀지 않으니 교육청에 가서 테스트를 받고 올 것을 권했다. 그리고 아들의 나이가 7학년에 해당한다며;; 영어 걱정 말고 7학년으로 고고하라고;; (아들의 옛 담임 선생님이 한 말 중에 이것만은 맞았다. 나이에 따라 배정을 하더라. 예전 집주인 가족은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얘기했는데) 어차피 시간표 중 세 시간 이상이 ESL이라서 실제 7학년 수업을 받는 시간은 4시간 이하가 되지만.


아들은 등교하기 싫다며, 더 놀고 싶다며 징징거려서 나랑 싸웠고 남편은 (솔직히 자주 그러지만...) 내비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길을 살짝 헤맸다. 신경질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교육청이라고 편의상 부르기는 했지만 Board of Education offices Fayett County Public Schools는 말 그대로 빠옛구의 공립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관청인 듯했다. ESL 사무실에는 우리 말고도 줄줄이 유색인종 가족들이 찾아왔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덕분에 예약 없이 무난하게 테스트를 받게 할 수 있었다.


아들이 테스트를 받는 동안 학교에서 받았던 수많은 종이에 서명을 하고 기입을 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렸다. 솔직히 나보고 다니라고 해도 헷갈릴 정도로;; (수업을 선택하고 교실을 이동하는 방식이다) 복잡한데, 거기에다가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ESL 수업까지 섞여 들어가니 이건 완전히 멘붕.


테스트가 끝나자 바로 결과가 나왔고(역시 수준은 그닥 높게 안 나옴 ㅋ) 그 결과와 우리가 서명한 종이 더미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가자 선생님은 바로 아들을 이제 우리가 맡을 테니 잘 가시라고....


네?


설마 지금부터??라고 생각했던 우리 가족 모두 당황 ㅋㅋㅋ

완전 처음부터 벼랑에서 떨어뜨리는 심정으로 애를 두고 학교를 떠났다. 아침에 상했던 빈정은 이미 "저 자식... 괜찮을까, 별일 없을까" 하는 엄마다운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후 4시 16분이 되면 도착한다는 스쿨버스를 온 가족(부부와 개)이 나가서 기다렸다. 꽤나 멀쩡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린 아들은 ESL 수업의 내용이 너무나 유치하다며, 빨리 그 수업을 끝내고 보통 수업을 받고 싶다고 기특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놈이 받아온 보통 수업(음악과 체육)의 강의계획서(자잘한 규칙과 지시가 많이 적혀 있음)를 모두 해석하는 데에도 두 시간이 거의 걸렸는데, 이놈.... 꿈이 야무지구나;;


놈이 아주 오래 기다렸던 테니스 개강 날이기도 해서 6시에는 부랴부랴 테니스클럽으로 갔다. 코치가 처음 하는 애 같지 않게 잘한다며,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극찬을 했다. 영어를 알아듣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라 그런지 애의 얼굴이 매우 밝았다.


한국에서 번역 수정까지 하느라 20만원 넘게 들였던 생활기록부 영문 공증 번역은 학교에서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허무하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봐주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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