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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Feb 20. 2016

영어가 많이 늘었습니까

사실 내가 뻥을 쳐도 그대는 모르죠

S씨는 네 명의 부인 중에서 정식으로 등록금을 내고 ESL을 수강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머지 중 두 명은 무료 ESL을 수강하고 있고 나머지 하나인 나는 아무 등록도 하지 않았다. (자랑인가) 이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매사 매우 정력적이고 적극적이라, 지난 한 달 동안 내게 봄부터 함께 강의를 듣자고 열심히 꼬셔대는 통에 정말 곤란하였다. (나는 그 돈으로 샘즈나 코스트코에 가서 하겐다즈 싱글바를 사다 먹고 싶다)


어쨌든 참 착하고 성실한 그녀가 학교에서 만난 홍콩 친구도 소개해주고 싶다고, 외부인도 올 수 있다고 권하는 바람에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 예스라고 말하고 오늘 학교에서 하는 cultural coffee hour라는 시간에 참석했다. 정해진 이슈에 대해서 자유롭게 프리토킹하는 시간이고, 학교의 카운셀링 담당자가 진행한다고 한다. 시간이 딱 점심 먹을 시간이라 애매했지만 난생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주차하려면 유료로 주차 허가증을 사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사지 않았고, 남편이 신나서 골프 치러 가면서 차를 갖고 나갔다) 정류장은 이렇게 단촐.


정차간격은 무려 30분.


학생증을 보여주면 무료고 일반 요금은 1달러다. 내가 다니던 모교에 비하면 무식하게 큰 크기를 자랑하는 학교라서 일찌감치 갔다. S와 카페에는 몇 번 같이 갔지만, 실제 영어를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좀 긴장됐다. 약속 시간이 되어 예전부터 소개해준다던 홍콩친구 앤젤라와 함께 S가 나타났고, 나는 앤젤라와 맨 처음엔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홍콩 사람인 앤젤라는 정규교육으로 보통화를 배우긴 했지만 보통화가 모국어인 사람이 아니어서 긴장이 덜했달까.


셋이서 커피아워가 열리는 강의실에 들어가자 담당 선생님이 혼자 있었다. 지난번 시간에도 아시안 네 명이 오붓하게 했다고 해서 기대 안 했는데 시간이 다 되자 미국인 한 명과 사우디아라비아 남자 하나, 대만인 여자 하나가 더 들어와서 아주 썰렁하진 않았다. 오늘의 주제는 '동물이 들어가는 영어 관용 표현'이었고, shooting the fish in the barrel, as the crow flies, my dogs are barking, other fish to fry, nervous as a long-tailed cat in a room full of rocking chairs, as rare as hen's teeth, two shakes of a lambs' tail 등의 표현을 배웠다. 뜻을  추측해보고 설명하고 여러분의 나라에선 비슷한 말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 진행을 했는데, 여기 들어온 미국인 신입생 여학생은 얼마나 지루했을까 괜히 미안해졌다. 수업 끝부분 쯤에서 내가 '이곳은 말로 유명한 곳이니 말이 들어가는 표현이 궁금하다'고 묻자, Don't look a gift horse in the mouth, Get off your high horse, Don't switch horses midstream 등의 표현을 가르쳐주셨다.


다 끝나고 생각하니 내가 그렇게 뭔가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고 제안을 하고 하다니, 어색하네;;


수업 후에 셋이서 신상을 좀 털고 나서 헤어졌다. 사실 재미있었지만 이걸 매주 하면 재미있을까 그건 좀 의문이다.


어쨌든 미국 와서 진짜 미국 사람이랑 영어 공부를 하며 이야기를 나눠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 신선했다는 얘기.


낮에 혼자 있을 때 드라마 보는 틈틈이 영어로 된 소설도 읽고 있긴 하고, 최근에는 휴방기가 끝나고 다시 시작한 그레이 아나토미 9회가 너무 심하게 아름다워서 영어 자막을 구해서 한글로 처음 수정 번역해봤다. 다른 자막보다 맞춤법 하나는 확실할 것 같으니 원하는 분은 이메일 남겨주시길. (이미 다른 존잘 자막이 돌아다니고 있는 데다가 저작권 침해로  수사 대상이 되고 싶진 않지만 처음으로 열심히 뭘 만들어내고 나니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ㅋㅋ)


전과 좀 달라진 점이라면 확실히 영어를 보고 해독에 걸리는 시간이 좀 짧아졌다. 전에는 알고 있는 단어라도 전체적인 의미 파악이 힘들 때가 좀 있었는데, 빨리 '대략 요런 얘기'라고 받아들이기가 쉬워졌다, 이 정도.


S처럼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좀 생겨야 할 텐데, 이 나태한 생활이 너무 심하게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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