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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Feb 28. 2016

적응과 진화

마치 처음으로 같이 사는 사람들처럼

 생활에 익숙해지고, 서로에게 하는 질문이 적어지고 나면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집 안에 도사리고 있던 갈등과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초반 3개월이 그 갈등을 최고로 폭발시키는 시기라고 한다. 일을 키우기 싫어 가면을 잘 관리하는 나 역시 여기에서는 '진지한 대화'와 '충돌'을 몇 번 겪었다. 하지만 이 4가족 중에서 가장 큰 충돌은 예전까지 M씨의 부부였는데('집에 가' 뭐 이런 싸움을 했음... 아주 초기에) 이번엔 S씨 부부가 오래 냉전을 겪었다. 남자들은 이해하기 힘들, '그 정도 가지고?'가 정작 배우자에게는 큰 문제라 더 힘들었달까. 분쟁 기간 동안 S씨는 거의 매일 나를 불러내서 밥을 먹고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서로의 자세한 가정 상황 같은 것을 많이 알게 됐는데, 항상 대화를 나누고 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너무 많이 털어놓은 건 아닌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 쪽이 더 많은 양을 쏟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그리고 그동안 쉴새 없이 계속 말을 하는 거다) 헤어지고나면 자괴감에 빠진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라는 인증을 하기까지, 그 사람에게 한 말을 고민하지 않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국에서 만나 한국에서 지속되지 않을 친구에게 무슨 얘기든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이성적인 생각을 한 다음에는 그래도 지금은 그 친구밖에 없으니까 자꾸 속을 트고 얘기하고 싶어지고, 얘기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는 후회하는 나쁜 패턴.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나에게 어떤 영향도  뒤끝도 없을 낯선 사람과 새로 사귀는 것도 허무하다. 그래서 열 달 뒤엔 소멸되는 것이, 지령을 전달하고 자폭하는 메시지처럼 안전하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S씨는 일주일 간의 강력한 시위를 마치고 나서 사과를 받고 앞으로의 변화를 약속받고 오늘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휴대폰은 간만에 잠잠하다.


가족이 집에 있으면 자유롭지 않아 답답하고, 가족이 나가면 외롭고, 친구를 만나면 피곤하고, 친구가 없으면 무료하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지난 번에 작업한 책의 번역 누락과 수정 문의가 왔는데 그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지 않고(돈을 벌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처음이라 이렇게 초조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벌지 않은 돈을 쓰는 게 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랬다가 쪼잔하게 걱정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아? 가만? 내 돈 털어서 건너왔잖아? 내 돈이었네. 내 돈 쓰니까 더 짜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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