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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Mar 02. 2016

제일로 평범한 하루

잉여하게 하루하루

드디어 이 중년여자의 화려한 미국생활을 까발릴 때가 왔다.


나는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의 어떤 시간에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다. (개 포함)

아침식사는 냉장고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개는 밥으로 차린다. 나머지 두 사람이 학교에서 먹는 것이 항상 샌드위치 혹은 햄버거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 식사는 그저께 샘즈클럽에서 대량 구입한 3종 고기  중 돼지고기(shoulder blade:어깨살을 넓게 잘라놓은 부위, 목살하고 비슷한 느낌인데 구워도 좋고잘라서 찌개나 카레에 넣어도 두루두루 부드럽고 맛남. 단 하나 단점은 대개 뼈가 있는 상태로 팔기 때문에 잘라내서 써야 함)를 고추장 양념한 '구이'가 메인이다. 고사리는 한인마트에서 말린 것을 사서 불려서 국간장에 무쳤고 시래기는 역시 말린 걸 사서 된장에 무쳤다. 김치도 마트서 구입해서 호쾌하게 가위로 잘랐고 깻잎절임은 전에 살던 분이 남겨놓고 가신 걸 지금까지 잘 먹고 있다. 김은 한국에서 가져온 놈, 생야채는 유기농으로 씻어 파는 스프링믹스다. 한국에서 싸온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은 조금 남아서 국을 좋아하는 남편한테만 줬다.


아침식사 말고도 남편의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대부분은 샌드위치로 준비한다. 속재료는 햄 혹은 베이컨, 양상추 혹은 스프링믹스, 토마토, 치즈, 계란부침이다. 이거 하나로는 너무 허기져 하니까 간식으로 피넛버터와 딸기잼 혹은 포도젤리를 발라서 토스트를 하나 더 준비하고, 스벅에서 커피 사먹지 말라고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아준다. 작은 용량의 주스병까지 세팅하면 끝. 기분이 좋고 시간이 남으면 작은 통에 과일을 깎아 담아주기도 하지만 매일 주면 버릇 나빠질까 봐 ㅋㅋ


혹시 남편 유학생과 미국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락을 사 오는 것도 추천한다. 도시락을 먹는 장소에서는 전자렌지도 쓸 수 있고 냄새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길래 가끔은 간단한 볶음밥을 담아주는데, 반찬과 함께 보내는 건 좀 힘들다.


식사를 마치면 개밥을 주고 아침 개 용변 산책을 한다. 아침에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모두 하도록 하고 있다. 개를 다시 데리고 들어오변 아들은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고 남편은 뭔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남편이 빨리 좀 나갔으면 하면서 잠시 쉰다.


남편이 나가고 나면 컴퓨터를 켜고 영자막을 번역하는 영어공부 시간을 갖는다. 100문장 정도의 자막을 번역한 후에는 그 날 아이디어가 있으면 브런치를 쓰고, 그리고 한글 파일로 쓰던 소설을 한 페이지 이상 쓰면서 왜 갈수록 글이 개떡 같은지 슬퍼한다.


그 후엔 텔레비전을 켜서 좋아하던 미드의 재방을 몰아주는 케이블 채널을 찾아 방만하게 감상한다. 그리고 점심을 아주 대략 먹거나 잘 먹거나 하는데, 요새 거의 매일 만나는 S씨의 호출이 많은 변수를 선사하고 있다. 나가서 먹을 때도 있고 집에서 먹여줄 때도 있고, 대개는 "부르면 나간다"지만 내가 나가자고 하지는 않는 편이다. 점심 후엔 개의 낮쉬를 위한 산책.


S씨를 만날 일이 없으면 오후는 크마나 그아 재방을 몰아보며 소파에서 지낸다. 그러다 3시쯤 되면 쌓인 설거지를 한다. 떨어진 물건이나 괜히 사고 싶은 물건을 아마존에서 구경하기도 하다가 4시 반이 되면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후로 해서 개의 오후쉬 산책. 애가 학교에서 점심으로 너겟 따위를 먹고 허기진 상태로 오면 치즈그릴토스트를, 별로 시장해하지 않으면 미숫가루나 요거트를 먹인다.


애가 숙제를 하거나 농구를 하러 나가면 하던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 저녁식사 밑준비를 해두고, 월요일에는 테니스, 목요일에는 영어과외를 가시도록 운전기사를 한다. 저녁은 6시에서 7시 사이에 냉장고의 한도 안에서 아침과는 살짝 다르게 지급한다. 스테이크감이 있으면 스테이크를 굽는 건 저녁식사 때. 저녁 후엔 설거지를 하고 학생들을 바라보며 쉬다가, 요일별로 드라마를 보며 누가 줄거리를 물어볼 때마다 신경질을 내고.


9시가 지나면 개님의 밤쉬를 마치고 드디어 씻고 가볍게 잘 준비를 마치고 특별히 볼 프로가 없으면 10시에 애가 자러 간 후에 내 침대에서 휴대폰 보며 놀다가 폰이 꺼지면 잔다.


2~3일에 한 번씩은 남편을 학교에 실어다주거나 데리고 온다.


왜 살이 찌지 않는 거지? 요새 신기한 건 그거임.

오늘은 S씨가 중고매장에 가자고 해서 한 시간 후엔 나가야 해서 살짝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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