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아서 가능한 취미
어려서부터 '버터'가 좋았다. 일하면서 만난 친한 P작가는 내 인품 또한 버터처럼 느끼하다며 틈만 나면 날 느끼한 윤버터 뭐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버터라는 음식이 가장 내 머릿속에서 환상적인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성경의 영향이 컸다. (어린 소녀일 때 나는 활자로 된 것은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는 활자 중독자였고 성경도 예외가 아니었음) 천사들이 아브라함의 집에 오는 대목에서 아브라함이 그들을 접대할 때 송아지 고기와 버터를 내놓는다. (그 덕분에 완경 후인 와이프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된다) 나는 천사들의 상에 차려진 고기와 버터의 향기를 진지하게 상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긋하고 고소한 음식일 것 같았다. 어쨌든 일관되게 책에 먹을 거 얘기가 나오면 그렇게 좋은 게, 하이디에서도 가장 신나는 건 치즈를 굽는 부분이었다.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나름 세련된 것을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는 버터를 집에 두고 가끔 스파게티를 삶아서 면에 버터를 묻히고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에 슬라이스 치즈를 찢어 뿌려서 주셨다. 하지만 정말 내가 좋아한 것은 버터 비빔밥(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빈 간단 버전도 있고 계란을 부쳐서 더한 호화 버전도 있다. 어지간히 기름 성애자였던 나는 가끔씩 거기에 참기름도 더했다), 그리고 굽지 않은 식빵에 차가운 버터를(차가우니까 당연히 얇게 발라지지 않음) 얹어서 먹는 거였다. 나이가 들고 내 살림을 살게 된 후에도 버터는 항상 냉장고에 두는데, 모든 물가가 미친 듯이 상승하는 와중에 버터 가격은 거의 7000원 선을 기록하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왜냐면 그 버터 한 덩이는 한 번 뭘 구우면 반절은 훅 날아가는 빈약한 양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고 나서 유제품 가격은 한국보다 싸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베이킹이 한국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코스트코에서 세 덩이 세트는 채 10불이 되지 않는 가격이다. 나는 버터를 넣어서 발효가 필요 없는 초간단 머핀, 파운드 케이크, 쿠키 같은 것을 만든다. 아무도 안 만나는 평일 낮에 혼자 사브작사브작 버터를 꺼내놓고 미드를 두 편 정도 본 후에는 또 사브작사브작 손으로 거품기를 휘적여서 간식을 굽는다. 스폰지 케이크를 만들려면 거품 내는 기술이 필요한데, 제대로 된 믹서를 사지 않는 한 내 손재주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컵케이크를 만들 때는 믹스를 사용한다.
실패작들 위주로 올려놓는다. 안타깝게도 잘됐을 때 찍은 게 거의 없다.
첫 쿠키. 피넛버터 쿠키님. 맛은 좋은데 모양이 대차게 망함.
첫 컵케이크. 믹스는 참 쉽고 달다. 머핀 구울 때처럼 유산지컵을 뺐더니 프로스팅이 흘러내려 심란한 모양이 됨.
세상에서 젤로 쉬운 파운드케이크
믹스로 만든 두 번째 컵케이크. 짤주머니가 없으니까 되게 웃긴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