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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pr 08. 2016

자신의 나라를 떠난 사람

앤젤라와의 작은 런치

갑자기 어느 날 오후 예전에 S씨를 건너 소개받은 홍콩 사람 앤젤라에게서 문자가 왔다. 마파두부 좋아하냐는 문자였다. 그녀는 홍콩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사였다. 남편은 컴퓨터 엔지니어 일을 하다가 석사 학위를 따러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기 대학으로 왔다. 물론 그녀도 직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와 함께 건너왔다. 다행히 앤젤라의 친정 부모가 살짝 앞서서 조지아주의 아틀란타로 이민을 한 상태라 마음의 의지가 되어주는 것 같다. 앤젤라는 영어 교사였기 때문에 현지인 수준은 아니어도 공포감 없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한다. (홍콩이 다언어에 노출되어 있는 특수한 지역이기 때문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그러함) 앤젤라와 남편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혼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아직 미국 면허와 자동차가 없다. 안타깝지만 앤젤라와의 친교에 그것은 큰 방해가 되었다. 앤젤라를 집에 초대하거나 어딘가로 같이 가기 위해서는 꼭 그녀를 픽업해야 했기 때문에 솔직히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어쨌든 마음 속으로, 우리들(회사에서 유학 보내준 사람들)보다는 여러 모로 상황에 제약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데다 그쪽이 더 가까워지고 싶어하는데 현실적인 불편함 때문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간단한 문자를 보고 나는 고뇌에 빠졌다. 먹으러 오란 소리겠지? 하지만 이미 저녁 시간이고, 다른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서 혼자 그 기숙사에 찾아갈 생각을 하니 좀 어색했다. (처음이기도 하고... 앤젤라는 같이 외출했다가 우리 집에 들러 차를 마신 적이 있음) 나는 정말 한참 고민하다가 일부러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난 다음, 마파두부는 정말 좋아하지만 이미 저녁을 먹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나서 또 소심하게 10분쯤 고민하다가 다시 "혹시 좀 남았으면 내일 가서 먹어봐도 되니? 낮에 한가함"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곧바로 역시 자기도 한가하고 마파두부도 남았으니 오라는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혼자 가기는 쑥스럽고, 항상 사교적인 S씨(우리를 소개해준 사람이기도 하고)와 함께 가야겠다고 연락을 취해보니까 공교롭게도 그날은 수업과 숙제가 많아서 좀 어렵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냉장고에 놔두었던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를 밀폐용기에 선물로 담아서 앤젤라의 집으로 혼자 갔다. 한국 여행 경험도 있고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준비했는데, 역시나 남의 집에 혼자 가는 건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전에 데려다준 적이 있어서 기숙사 건물은 익숙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범한 원룸 스튜디오였는데 부엌에는 중국식 양념이 가득가득 쟁여져 있었다. 부엌과 방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앤젤라가 서빙해준 마파두부는 돼지고기가 아주 많이 들어가고 국물이 적은 데다가 살짝 청경채가 곁들여져서 정말 내 취향이었다. 신나게 먹으면서 중국 음식 얘기로 화제를 삼았다. 어디에 가도 정말 그 나라 음식은 먹기 힘들다고, 이곳의 중국 음식도 한국의 중국 음식도 정말 중국 음식은 아니라고.


음식 이야기 다음으론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떠나온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를 짐작하기는 힘들지만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된(아주 젊지는 않은) 앤젤라 부부가 커다란 결단을 내리고 그때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에서 새출발을 하게 된 사연이 난 궁금했다. 앤젤라는 홍콩에서는 그저 일하고 먹고 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는 생활이었다고, 항상 시간에 쫓겨서 집에서 요리를 한 적도 거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극소수의 부자가 아닌 이상 아주 좋은 삶을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홍콩과 한국의 암울한 독재 상황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계속 똑같이 살기보다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앤젤라가 정말 용감하고 멋져 보였다. 나는 희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곳에 있는 내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계속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냥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자고 그것밖엔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는 말. 이제 뭔가를 새로 공부한다면 정말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말.


나는 "passion?"이라고 되물었고 앤젤라는 끄덕였다.


나에게도 물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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