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여러 가지 증상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편에게 "쟤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면 피임법을 가르쳐놔라. 언제 갑자기 몸만 어른이 되고 사고를 칠지 모르는 일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차성징이 오지 않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피부와 맑은 목소리를 가졌고 엄마 앞에서 목욕하고 나서 나체로 돌아다니는 게 아무렇지 않았다(그래서 체모가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_-). 그 상태 그대로 미국으로 오게 됐고, 인생의 가장 큰 여러 변화를 여기에서 한꺼번에 맞게 된다는 것이 좀 두렵고 안쓰럽기도 했는데...
그래서 변화가 뭐가 왔느냐 하면....
1. 머리 모양에 신경 쓴다
블루클럽 이발비를 받고 엄마가 엉망으로 자른 머리를 감수하던 몇 달 전의 모습은 어딜 가고, 지금도 엄마가 머리를 자르긴 하지만 주문사항이 장난이 아니다. 옆머리가 너무 많이 튀어나온 것 같다, 지나치게 바가지 헤어 아니냐, 등등... 너무 지쳐서 머리 자르러 돈 내고 다녀도 된다고 진작에 말했지만(저가형 체인점에서는 20달러 정도면 자를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미용실에 다녀온 아는 지인이 돈은 돈대로 썼고 가위질은 한 10번 하고 끝났으며 자신이 들고 간 사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양이 나왔다며 다신 안 간다고 절대 비추라는 정보를 전해준 바, 이놈도 미국 미용사에게 자기 머리를 맡기고 싶지가 않아 나만 볶아댄다.
미국인 친구들의 곱슬거리는 머리가 부럽다며, 왜 자긴 이렇게 직모냐며 툴툴거리기도 하고(남편과는 달리 아주 숱이 많고 새까맣고 건강하고 탱탱한 생머리) 괴로워하길래 투블럭 컷을 멋지게 못해주는 나의 죄책감을 담아 헤어젤도 사다줬다. 젤을 사용하고 나면 그날 반드시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자주 쓰지는 않지만, 매우 기뻐하더라. 사실은 젤을 사다주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진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앞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꼬라지를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랬다.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14살짜리 소년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2. 브랜드에 목숨 건다
지금까지 아들은 집앞에 있는 아울렛의 매대 상품을 입고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신발은 내구성이 좋은 프로스펙스를 많이 신었다. 메이커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던 놈이, 미국 시골에 와서 학교를 석 달 다니더니 완전히 변했다. 온리 나이키, 나이키 내 사랑... 신발이 아직 멀쩡한데도 새로 나이키 사달라고 조르다가 씨알도 안 먹히자 이 짠돌이가 자기 용돈 모은 걸 헐어서 신발을 샀다. 그리고는 애지중지 비 안 오고 안전한 날에만 신는다.
몰에 가면 또 브랜드 티셔츠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의류할인점에서는 "이거 13불밖에 안 하는데 안 사줄 거야?" 하다가 그렇게 갖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라 했더니 입을 한 자발은 내밀고 있다.
3. 발작과 비슷한 신경질을 낸다
저가 생각해도 이유 없이 한껏 성질을 부린다. 그래도 이건 못 들은 척하고 10분 정도 방치하면 제정신이 돌아오니까 아직은 처리가 가능하다.
이제 곧 몸까지 변해서 끌어안기도 조심스러워지고 뽀뽀도 거부하겠지. ㅠ
모쪼록 통제광인 내가 타협에 성공하여 내 아들의 왼팔에 잠들어 있는 흑염룡이랑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