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을 떠난 상태에서 세월호 집단살인 사건의 2주기를 맞이하는 것은 조금 덜 숨막혔다. 이 어마어마한 거리가,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분노를 조금 희석해준 것이다. 비겁하게도 그래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런 잠깐의 안도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자식은 그곳에서 계속 가만히 살아가야 하니까. (불법체류자가 될 배짱 따위 없음 ㅋ)
그래도 그런 일을 떠올릴 계기가 없는 이곳의 생활에서 전혀 기억을 하는 눈치조차 없길래, (아들은 아직 SNS를 하지 않는다) 아침식사 후에 "오늘은 그 슬픈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너를 그렇게 잃었다면 2년 동안 살아서 숨쉬는 게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너무 억울해서, 못 살았을 것 같다." 했더니 그냥 말똥말똥 날 쳐다보기만 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아들의 청순함을 떠올리다가 문득 아, 얘 이러다가 친구가 '일베' 재밌어 하면 들어가서 또 재밌다고 낄낄거리며 일원이 되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세월호로 시작한 이야기는 일베로 샜다.
"일베라는 말은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말의 줄임말이고, 안타깝지만 많은 젊은 남자들이 거기서 재미있다고 커뮤니티를 즐기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죽음을 농담으로 여기는 악질들이 점점 악화되는 곳이다. 그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너는 쓰레기 확정이다."
했더니 아직도 감이 안 잡히는 표정이길래, 아예 세월호 사건 후 그들이 지껄였던 오뎅 드립을 얘기해줬다. 그랬더니 애가 진심 놀라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어머님들, 애는 반만 믿습니다. 우리 애가 깨끗하고 순백하다고 믿으면 뒤통수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네가 작년에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통곡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네가 그렇게까지 공감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의는 공감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절대 잊지 말고 약하고 슬픈 사람을 보며 살아라."라고 마무리했다. 그랬더니 얘가 갑자기 그 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고마웠다. 최악의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이 돼서.
사실 또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첫 인터뷰를 읽고 너무 가슴이 무너져서, 정작 나는 그 뒤를 읽지도 못했다.
지금 이 책의 후속작품을 지원하는 펀딩이 있다. 나는 외국에 있어서 지금 카드 결제가 안 된다. (전화 인증이 필요한 모든 일처리를 못하고 있음) 미안하지만 새언니한테 부탁해서라도 후원을 할 생각이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은 2주기를 보며, 그 난리를 치며 했던 투표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