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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pr 21. 2016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처음에는 브랜드에 맛들이기 시작하는 아들이 중학생 티가 나는구나... 하며 일종의 흐뭇한 마음 반 정도로 지켜본 게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용돈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샀을 때는 매우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운동화를 사고 난 후 약 2주 후에 다시 자기 지갑을 들고 내게 "마샬에 데려가줘!"라고 얘기했을 때엔 ??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 재미있었다.

-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몰랐기 때문에 괜히 설명하자면, 여기 오니까 '할인점' 체인이 굉장히 많다. 마샬, 티제이맥스, 고드만, 벌링턴 등등... 옷만이 아니라 잡화와 신발까지 웬만한 일용품을 모두 살 수가 있다. 이월된 메이커 제품과 저렴이 제품이 섞여 있어서 굳이 아울렛 단지까지 멀리 나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합리적인 쇼핑이 가능하다


중학생을 마샬에 데려다드리고, 그분이 옷을 고르는 걸 지켜보았다. 사이즈에 대해 아직 감이 없길래, 그것만 좀 도와주고 이곳에선 티셔츠도 시착이 가능하니까 고른 옷은 피팅룸에 가져가서 직접 입어보도록 하고... 그리고 그냥 지켜봤다. 아주 의외로, 아들은 가격을 살펴가면서 꼼꼼하게 옷을 골랐다. 결국 신중하게 30달러 안쪽에서 반팔티 두 개와 반바지 하나를 구입했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서 소비세로 붙은 센트 동전까지 꼼꼼하게 계산을 마치는 걸 보고는, 아, 브랜드병이 나쁘지는 않구나, 애가 부쩍 커버렸구나, 하고 살짝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후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그분이.... 100달러 정도 하는 운동화를 사야겠다고 갑자기 난리. -_-;; 그때부터 내 평상심은 끝장났다. 여기 와서 학교 체육관에서 사용할 짐슈즈를 샀고, 신고 있던 프로스펙스도 아직 신을 수가 있고, 무엇보다 새로 '아가'라며 어루만지며 샀던 나이키 운동화는 아직 때도 안 탔는데, 이번에는 아디다스 신발을 사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운동화고 옷이고 충분하니까 더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득해봤지만 거의 안 사면 죽을 분위기. 결국은 인터넷으로 하나를 찜해놓고, 또 나를 기사로 써서 몰에 가서 두 시간 동안 각종 샵에 들어가서 신발을 봤다. 부아가 치미는 것이, 엄마 선물로 만원 쓰는 것도 벌벌 떨던 놈이 백불짜리 신발을 겁없이 보고 다니는 거다. 용돈 괜히 줬다는 생각만 들었다.


더 골때리는 건 두 시간 동안 신발을 샅샅이 서치한 후에 결국은 자기가 인터넷으로 봤던 걸 사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리얼리???) 그 날 밤에는 현금을 내게 건네며, 엄마 카드로 결제해달라고 지시를 내리고는 들어가 잤다. 나는 어째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다독이면서 주문을 했는데, 또 이게 짜증나게도 에러가 나서 돈은 찍히고 주문은 안 들어가는 거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아디다스 홈페이지 라이브 채팅 상담원이랑 급하게 얘기해봤더니 주문이 정상처리 되지 않았으면 그 돈은 환불이 될 거라며 지금 다시 주문하란다. 나는 환불되는 걸 기다려보고 나서 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은행 앱을 켜고 그 돈이 정말 환불되는지 지켜보는 중이다. (만 하루 반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 없음) 이 정도까지 신발타령에 동참하고 나니 급피곤해져서, 나는 그분께 "너는 한창 클 나이라 지금 멀쩡한 신발을 여러 켤레 두고 있다 보면 작아서 못 신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신발은 사지 말고 가을이 오기 전에 멋지고 네 맘에 드는 걸로 옷이나 사면 어떻겠니?" 하고 달래보았더니 그분이 생각해보시겠다고 한다.


생각은 아주 잠시 하신 듯 또 그 날 밤 다시 그분은 인터넷으로 숙제도 팽개치고 한 시간 동안 신발을 보다가 결국은 인터넷샵에서 그 신발을 사겠다고... 환불 확인되는 대로 진행해달라고...


요 며칠 나는 정말로 아들이 짜증났다. 진심으로 "왜 그렇게 브랜드에 집착하는 거냐,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키도 작은 동양애라서 무시당하는 거냐? 브랜드를 걸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자존감이 낮은 상태냐?" 하며 쏴붙였지만 애는 입을 꾹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통제하고 싶은 내 욕구와 '내가 모은 돈 내가 쓴다는데 뭔 참견'이냐는 아이의 억울한 심정이 침묵 속에서 팽팽하게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나는 도저히 이 애를 이해 못하겠다."의 중학생 버전. 나 역시 중학생 때부터 나름 덕후 생활을 했고, 그래서 생기는 돈은 모두 만화책을 사는 데에 때려박았고 나중엔 한국에서 정식으로 볼 수 없는 일본 애니를 구하는 데에다가도 들이부은 적이 있다. 애가 나이키 아디다스 덕질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나 자신에게도 수십 번씩 자문을 해본다. 그런데 진짜 힘들다. 자꾸 아들을 내 기준에 맞춰 혐오의 눈으로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얄팍한 자식, 합리적이지 못하고 남의 시선에만 신경 쓰는 자식, 자기 할 일은 뒷전이고 머리에 똥... 아니라 브랜드만 가득한 자식, 책이나 읽어라 이 자식아... 가 내 입 속에서 회오리를 이루고 있어서 한 사흘째 애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엄마들이라면 알겠지만 자식을 미워하는 순간은 엄마에게도 지옥이라서, (용서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자괴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지옥) 매사 짜증나고 빨리 쟤가 다 커서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우울했었다. 남편은 한때만 그럴 거라며 여유작작하다. 남편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더 열받는다. 질릴 만큼 브랜드 질러서 입힐 만큼 벌어다주면서 여유를 부리란 말이얏!


오늘 아침 나는 아직도 앙금이 풀리지 않아 불퉁하게 아침 준비를 하고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침대로 다가가 다정하게 뽀뽀를 하며 깨우고 싶지도 않아서 7시 10분이 될 때까지 그냥 소음을 내며 일어나라고 텔레파시를 보내기만 하고 있었는데, 일어난 아들이 나한테 다가왔다. 나는 짜증스럽게 "얼굴이나 씻어!" 했더니 놈이 주라기월드에서 남자주인공이 벨로시랩터를 진정시킬 때처럼 손바닥을 내게로 내밀고 "자... 진정하세요, 씻었어요, 씻었다고요."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아들을 끌어안았다. 아직 아기 촉감이 느껴져서 또 당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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