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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May 05. 2016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

이라고 하는 말처럼 잔인한 말이 없다

동방의 조그만 나라에 사는 내가 도널드 트럼프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덕분이었다. 그 서바이벌에는 출세를 하려고 눈빛이 벌건 지원자들이 와서 시키는 대로 미션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은 공적으로 몰리고 뭐 이러저러 인터뷰 화면이 나오고, 그러다가 도널드 트럼프가 마지막에 "너 해고!" 하면 그 지원자가 쫓겨나면서 한 회가 끝난다. 그 쇼를 몇 시즌치 챙겨 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렇게 많은 에피소드를 보면서도 도널드 트럼프가 막강한 부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가 무슨 사업을 어떤 비전을 가지고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부가 거의 부동산으로 이루어졌다는 정도였다. 볼 만큼 보고 집어치웠으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더 업데이트되는 정보 없이 지냈는데 그는 갑자기,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나타났다.


간추려 말하자면 막말의 화신, 보통 '개저씨'가 할 수 있는 막말은 거의 다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차별과 혐오를 엄격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미국의 반절에서 그는 인정받았다. 아마 '상식'을 가진 미국인들은 지금쯤 그 점에 절망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상식'을 사실은 거부하고 싶었던 자기 이웃들의 더러운 마음 저편이 트럼프라는 상징으로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742511.html?_fr=mb2


게다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중띠게 가난한 남부(정서적인 남부 포함) 미국인들이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대기업이 자기 기업인 것처럼 걱정해주는 1번 찍기 머신들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너무 비슷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제 이 동네에 빌 클린턴이 헬기를 타고 와서 힐러리 지원 유세를 했다. 가볼까 했지만 역시 사람들에 파묻혀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고, 개 산책 시간이랑 겹쳐서 관뒀다. 이번 주말에는 샌더스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장소를 빌려 유세를 벌인다고 들었다. 샌더스에게는 당연히 더더욱 흥미가 있지만, 미국의 유권자가 아닌 데다가 엄청난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귀찮아서 역시 관두기로. 아이러니한 건 이 '정서적인 남부' 동네에 그들이 와서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점이다. 여긴 이미 도널드가 접수한 지역이다.


어쨌든 만약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이라고 쓰고 준세계라고 읽는다)의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수치를 조금은 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우린 직선제라 여전히 더 쪽팔리는구나.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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