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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May 15. 2016

생각보다 아주...

친절한데?!

그저께 낮에 운동하러 나갔던 남편과 샘즈클럽에 갔다. 사실 점심 차리는 게 심하게 지겨워서, (남편이 방학한 후로 점심을 '제대로' 먹어야 했다...) 장보기를 핑계로 거기서 가성비 좋은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싶었기 때문에 간 것도 크다. 어쨌든 시키지 않아도 골프 하나는 열심인 그가 약간 점심시간을 넘겨 돌아왔는 데다가 이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길이 막혔기 때문에 샘즈에 도착했을 땐 1시가 훨씬 넘었고, 따라서 배가 많이 고팠다. 여기 매점(식당?)에서 주는 콜라컵은 아주~ 크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올 때마다 음료는 하나만, 그리고 나는 커다란 피자를 한 조각, 남편은 피자에 핫도그 하나를 더해서 섭취하면 된다. 피자 종류를 고르고 주문을 했는데, 이상하게 오더를 받는 직원이 많이 산만했다. 보통 피자는 말하는 즉시 케이스에서 꺼내서 내놓는데 피자를 제대로 주질 않아서, '피자 두 조각 시킨 거임, 쓰리미트랑 치즈임'이라고 어필을 다시 했다. 핫도그도 피자와 반대쪽에 아무렇게나 놔뒀고 컵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속으로 '쳇, 미국 서비스 정신은 별루얌...' 생각하며 음식을 챙겨와서 앉아서 와구와구 먹고 쇼핑을 마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어제 집에 앉아서 이틀 만에 가계부 정리를 하면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6달러 남짓 나와야 할 점심값이 28불 넘게 찍혀 있는 것이었다;; 아들이 아파트 수영장에서 놀 때 쓸 물안경 사달라는데, 넌 물안경 몇 번 못 쓰고 해먹잖냐, 비싸면 절대 안 사줌 그런 식으로 대응해서 점심 먹으며 아들이 설움 폭발한 후였다. 그런데 물안경 따위는 얼마든지 살 수 있을 21불 정도의 돈이 오청구된 것이다. 그 금액을 보고 놀란 다음 나는 2차로 깊이 절망하였는데 그 이유는 평소 뭘 사든 열심히 영수증을 들여다보던 짠순이 아줌마인 내가 그 날 그 점심 때만은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받았는지조차 모르겠고 물론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짜증을 참으며, 영수증이 없는 한 네 주장을 들어줄 리가 없다, 그냥 20불 버린 셈치자...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그 21불을 아끼려고 어떻게 살고 있는데!! 나는 비굴하게 남편에게 부탁해서 곧바로 함께 샘즈클럽 고객센터로 달려갔다. (남편한테 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원권을 예전 거주자 것을 받은 걸 쓰다가 갱신해버려서;; 내가 쓸 배우자 회원권을 추가로 만들 수가 없었다. 만약 고객센터에서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하면 망하는 거임)


이 지방 사람다운 푸근한 몸집을 한 크리스는 다른 직원과 달리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우릴 맞이했다. 나는 일단, 내가 어제 여기서 점심 먹었음,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임. 하지만 오늘 확인해보니 금액이 아주 wrong하게 청구됨. 어제 먹은 건 꼴랑 요거임... 일단은 영수증을 재발행해주셨으면 좋겠음이라고 말했다. 사실 "돈 돌려줘! 나 이만큼 안 먹었어! 씨씨티비라도 돌려서 우리가 먹은 걸 확인해!" 외치고 싶은 답답한 심정이었지만(그 매점에서 그만큼 먹으려면 피자를 두 판 넘게 먹어야 한다?) 남편 말대로 영수증을 확인하고 챙기지 않은 내 잘못이 크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크리스가 전산에서 내 결제 내역을 체크하고, 매점으로 가서 그쪽 기계를 보고 오고, 부지런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전산이 뭐가 잘못됐는지 일단 처음 접속한 단말기에선 내 결제 내역을 찾는 데엔 실패했기 때문에 난 이제 정말 희망을 버려야 하나... 살짝 침울해져 있는데, 이놈이 내게 "미안, 최선을 다했지만 넌 구제 방법이 없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카드로 어제 오청구 금액+30센트 정도의 돈을 환불처리를 해주는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회사에 제출하는 무슨 양식 정도는 작성해야겠구나... 우리 신분이 여기 회원권과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겠구나... 그냥 다 포기하고 집에 갈까 생각했는데, 진짜 그냥 그 자리에서 돈을 돌려줬다. 더 웃긴 건 밥값을 빼지도 않았다. 잊어버린 걸까 하고 봤는데 그가 띄워놓은 pos 기계에 우리가 먹은 내용과 금액은 멀쩡하게 찍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해서 매장을 나왔다. 미국에 온 후로 수많은 명찰을 봤지만 나는 어제 처음으로 Thank you, Chris! 라고 이름을 불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진짜 이런 해피엔딩 기대 안 했는데요!


어쨌든 이번 일로 난

1. 샘즈클럽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코스트코보다 상품 구색이 약~간 구려서, 놈들아, 분발해! 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리고 오청구를 깨닫자마자 그렇게 싸고 먹을 만해서 좋아했던 그 점심도 그냥 앞으론 안 먹어야지 울분을 품었는데... 나 진짜 이제 샘즈에 충성할 거예요. (이미 사실 충성하고 있었지만)

2. 미리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일단 되든 안 되든 대응해보는 게 중요하다. 사실 남편 말이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영수증을 챙기지 않은 것이 대역죄라고 생각했기에 가서 얘기하는 게 무의미하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렸더라면 21불은 8시 45분 하늘나라로... 였을 것이다.


미국에 와서 이런 친절, 거의 처음 겪어봐서 감동했습니다요.

물론 얘네가 슈퍼마켓에서 봉다리에다가 상품도 넣어주고 있는, 우리에겐 좀 익숙치 않은 직원까지 따로 두는 나라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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