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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May 30. 2016

혼자의 시간

완전하게 혼자, 이런 경험은 처음?

그저께 아침 일찍 남편이 절친의 집에 신세를 지러 동부 여행을 떠났다. 남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도저히 맞지 않는 나는(그 집의 주부가 당신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해보았으나, 남편은 자기 마누라만 손님이 묵는 것을 싫어하는 별종인 것으로 안다. 정말이지 맑고 밝은 아이 같다) 어디 가나 민폐가 되는 성질 나쁜 개와 함께 집에 남았다. 6박 7일이나 되는 나름 긴 여행이라, 그리고 아직 아픈 지 얼마 안 되는 마누라인지라 남편은 떠나기 직전까지 "같이 가고 싶으면 가자"라고 말했지만 당연히 거절했다.


항상 가족이 어딜 가면 굉장히 좋아하는 못돼먹은 내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일정이 길어서인지 인사하며 살짝 눈물이 글썽이는 아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집이 휑하고, 밥맛도 떨어지고, 되게 이상한 기분을 어쩌지 못했는데 다행히 그날 저녁 약속이 있어서 S와 함께 시내 나들이를 했다. 하지만 S 역시 가족과의 여름 장기여행의 계획을 앞당겨서 곧 떠나야 할 몸... 웬만하면 혼자라고 나와 굉장히 많이 어울려줄 성격인데 정말 바빴다.

다음날에는 냉장고에 있던 닭 한 마리를 혼자 먹어낼 자신이 없어서(입맛이 갑자기 없어짐) S네 가족에게 오븐 통구이를 해서 점심을 때울 수 있게 갖다주었다. 차가 없어서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어야 하긴 했지만... S의 빈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환기를 시켜주기로 했고, 어차피 사용하지 않을 선풍기도 빌렸다. 그리고 약간의 감사의 뜻(돈)을 치르고 7월에 방문하는 친정 가족 중 오빠 부부의 숙소로 일주일 정도 사용하기로 했다.


나의 가족이 떠나고 나자 이곳 날씨는 갑자기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물에 들어가기에는 추워서 피가 끓는 십대 아이들만 놀던 아파트 수영장에 가족 단위의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너무 더워서 나도 어제는 혼자 나갔다. 서향인 집에는 오후 4시 경에 드는 햇빛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 뜨거움을 좀 식히고 싶었다. 풀 안에서 근심 없이 놀고 있는 어린 애들을 보면서 아들을 생각했다. 한 여자아이가 자기는 소피아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알려주자, 마구 웃으면서 funny라고 말한다. 내 이름이 웃기니? 하고 묻자 sounds funny라고 하고 또 까르르 웃는다. 여덟 살 여자아이지만 낯선 어른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회화 실습은 그쯤에서 종료.


드디어 오늘 아침에 S의 가족은 1차 목적지 플로리다로 가는 길에 올랐다. 출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고 열쇠를 받았다. "두 달이나 못 보는 거야?" 하며 나를 안아주는 S는 키가 커서, 나는 그 품에 폭 파묻혔다. 아, 정말 이 다섯 달 동안 많이 가까워졌구나. 서로 남편하고 싸우면 연락해서 스트레스 푼다고 나가서는, 그래도 아줌마 근성 못 버려서 싼 곳만 찾아다녔었다. 그녀 없이 지내는 두 달이 갑자기 서늘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정이 많이도 들었다.


이제 동네에 S도 없고, 닷새 후까지 나는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슈퍼마켓이 걸어서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동안 참 혼자 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어디 한번 얼마나 혼자가 좋은지 겪어봐라'가 닥쳐온 느낌이다. 독신으로 살아본 기간도 없는 데다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과는 다른 혼자. 겪어보자. 그리고 그립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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