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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May 26. 2016

그 무섭다는 미국 병원

나는 안 가보나 했지만...

월요일 새벽에 잠이 깼다. 목이 아프고 그 통증이 귀까지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내내 잠을 설치다가 아침 식사도 영 힘들게 먹었다. 그냥 가벼운 목감기인가 싶었는데 가래나 그 특유의 느낌이 아니라 이상한 통증이어서, 문득 내 목에 있는 결절 생각이 났다. 10년 넘게 가지고 있는 이 갑상선 결절에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나서 남편에게 병원에 가야겠다고 의논을 했다.


본인 상이 아닌 이상 깰 수 없다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고 남편이 집앞에 있는 병원에 함께 가주었다. 영 생소한 단어들을 번역기로 미리 찾아두고, 초진 환자를 위한 서류 네 페이지를 기입했다. 기입하고 나니까 간호사가 원 트웬티, 라고 어쩌구 하는데 못 알아들었다. 여기서 살면서 뭘 못 알아듣는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처음에 못 알아들은 당황함 때문에 그 다음에는 더 못 알아듣게 된다는 점이다. 애처롭게 남편을 쳐다보자, 남편이 (보험 적용이 안 된) 진료비 120불을 계산하라는 얘기라고 설명해줬다. 아직 의사도 만나기 전에 야무지게 수납부터! 한국에서 보험에 가입하고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진료받은 돈은 정산받게 되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120불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큰 돈이다. 혈액이나 다른 검사를 하게 되면 그건 별도라는 친절한 설명도 따라왔다.


조금 있다가 호출이 왔고, 간호사를 따라가서 체중과 기초 바이탈 체크를 했다. 아무래도 결절하고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는 호소를 하고 나자 간호사가 나를 진료실에 혼자 놔두고 나가버렸다. 체감으로는 10분 정도 기다리고 나자 라티노 여자 의사가 들어와서 다시 목구멍과 귓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결절 촬영과 생검은 꼬박꼬박 했느냐고도 묻고, 항생제 처방을 하겠다고, 다 먹고 좋아지면 안 와도 된다고. 집에 있는 진통제와 알레르기약도 같이 먹으라고 얘기를 해줬다. 미국에서 첫 진료라 원래 다니는 약국이 없다고 말하자, 동네에 있는 라이트에이드로 연락을 넣어둘 테니 이름을 대고 사가면 된다고 안내해줬다. (처방전을 받아서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그것이 120불어치. ㅋㅋㅋ

의사 기다리면서 진료실...


보험회사에 제출하기 위해서 진료 기록을 받아갔는데, 진단명을 보니 급성 인두염이라고 나와 있었다. 라이트에이드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 항생제 10일치를 받았다. 가격은 4불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은 보험료 청구 실습을 했고 나는 누워 있었다. 다음 날부터는 다시 즐겁게 운동하고 놀러 다니신다. 난 그 후로 사흘째, 엄청 좋아지지는 않았고 그냥 기운이 없고 매우 식욕이 좋다. ㅎㅎ (할 일이 없으니까 먹는 생각만 남)


다행히 별 큰 일이 아니어서 이번엔 안심했지만, 촬영이나 검사 같은 걸 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부터 하게 된다. 빈혈 수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보험 적용이 안 될까 봐서 요청하지 못했다.


아플 때 병원비를 생각하고 마는 이런 삶은 옳지 않다. 이런 나라에 다들 오고 싶어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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