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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n 05. 2016

수표 이야기

누구나 '백지수표'를 가지고 있다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캐치미이프유캔'을 본 사람이라면 미국의 개인 수표 제도에 대해서 신기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찍찍 쓴 수표가 돈 대신 사용이 가능한 세계라니, 도대체 뭘 믿고? 싶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1월에 우리 공동계좌를 위해서 남편과 나는 수표책을 인터넷으로 샀다. 이 체크책은 거래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 사은품으로 몇 장 주는데, 그것으로는 1년 동안 사용할 수가 없는 데다가 은행에서 사면 비싸다.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차이가 살짝이 아니라 어마어마함) 은행에서 받을 때에야 은행에 내 계좌 정보가 다 있으니까 뭐 더 필요하지 않지만 인터넷 주문을 할 때에는 내 신분과 계좌에 대해 모두 기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내 이름이 인쇄된 수표가 주문제작되어 배달된다. 우린 25매짜리를 시켰는데 공과금 말고도 가끔 배달 한인마트에, 튜터에게 썼더니 갈 때까지 살짝 신경 써야지 모자라지 않겠다.

수표(체크)의 사용처는 일단은 집세와 관리비. 한 달에 한 번씩 아파트 오피스에 수표를 써서 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학교에 보내는 각종 비용. 현장학습(필드 트립) 비용 같은 것을 모두 수표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물론 가게에서도 쓰고 싶으면 써도 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끄적여야 할 부분이 되게 많음. (빈 칸 보시라~)

일단 받는 사람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 인명이나 회사명, 단체명을 써서 누가 이 돈을 현금화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정한다. 이게 되게 골때리는 게, 그 사람 본인(이나 그 단체)이 아니면 아무리 체크가 있어도 현금화 안 된다. 그냥 종이야! 수표를 어디서 주워서 내 주머니에 쓱~ 이런 거 전혀 불가하다. 이것 때문에 우리 전에 우리집에 살던 한국인 가족은 곤경을 겪었는데, 귀국 후 한 달이 지나서 관리비 정산과 함께 보증금이 반납이 된 것이다. 미국 계좌를 이미 해지한 상태여서 500불이 넘는 돈이 그냥 허공이 떴다. 일단은 한국에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드렸는데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오피스에도 항의해봤지만 "본인에게 체크를 발급하는 것 외에 회사에서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 전무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금 절대 안 된단 얘기. 은행에서도 본인 명의가 아닌 체크를 현금화해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도 귀국 후에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매우 긴장이 됐는데,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미국 계좌를 해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그쪽으로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돈 받을 사람(단체) 외에도 금액을 아주 정확하게 영어와 숫자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해서 적어야 한다. 은행의 지급신청서 같은 것을 연상하면 되는데, 빈칸을 남기거나 위조의 여지를 남겨두면 위험하다. 악의를 품은 사람이면 그걸 위조하는 건 가능함.

물론 신용거래의 기본인 서명도 들어간다.

수표는 나가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꼭 100프로 그렇지만은 않다. 앞서 말한 경우처럼 회사에서 수표로 돈을 받는 경우도 있고...

나는 오늘 내 이름으로 수표를 받았다. 개사료 회사에서 보내준 거다. 오옷? 무슨 일?! ...아줌마의 끈질김을 발휘하여, 석 달 전쯤 개 사료를 사면서 리베이트 행사에 참여했다. 거기서 지정한 사이트에 내 신상을 넣고 그걸 프린트해서 회사로 보내주면 10불을 돌려준다길래(개 사료 가격은 30불이 조금 넘음) 그 귀찮은 걸 꾸역꾸역해서 우편물을 보낸 다음 기다렸는데 약 석 달이 걸려서 오늘 왔다! 근데 수표가 엽서로 왔다. 패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