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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Oct 13. 2015

위기에서 바닥이 노출되는 법

결국 문제는 내가 더 힘들다는 거야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노력해왔던 나로서는 남편에게만 의지하는 항목이 많지 않다. 생각해보면 '이불장에 이불 넣기' '겨울이 다가올 때 이불솜 넣기' '이불 털기' '재활용 쓰레기 내놓기' '밥솥 같은 소형 가전 수리' '전등 갈기' 외에는 의지하는 가정 업무가 없는 것 같다. (많은가...) 가계적으로는 개인 세금이 아닌 재산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납부도 맡기고 있다. 이번에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음은 '다 맡겨버리고 편해지고 싶다'가 굴뚝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대체적인 사항은 내가 확인하고 있다. 아이의 전학 문제는 담임이 워낙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바통을 넘긴 케이스라 예외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실제 별로 한 일은 없는데, 마음의 부담이 너무 격한지라 나도 모르게 불만이 층층 쌓였던 모양이다. 


결국은 어제 아침 통화에서 남편에게 작게 폭발을 했다. 먼저 건너가서 집과 자동차 계약을 마치는 쪽으로 하면 안 되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그러면 함께 그 지역으로 가는 유학생들의 백업을 자기가 도맡게 된다고 한다.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의 부탁에는 항상 약한 그 사람인지라, 뭔가 그림이 보이는 거다. 여기저기 따라가주고 참견해주고, 결국 맘에 안 드는 결과가 나왔을 땐 독박도 쓸 거고. 우리 가족이 정신 없어도 남의 부름에는 거절을 못하는 그의 모습을 앞당겨 상상하고(나의 상상력은 부정적인 면으로는 쩔어준다) 그간의 스트레스가 드디어 분화구를 삐져나왔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가고 당분간 좀 모른 척하면 안 되겠어?"

그러자 이번엔 그가 화를 낸다. 불가능한 소리를 하지 말라며. 생각 좀 하라며.


'생각을 하라'는 말을 그 사람에게서 내가 듣다니.

생각이 많아 탈인 내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텐 독신이 딱인데.


결국 나는 남편이 남들 뒤치다꺼리 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것보단 동시에 가서 우리 가족 문제로 풀가동하게 하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비우는 중이다. 낙천적이고 근심이 없는 그 사람과 비관적이고 근심이 많은 나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부부다. 14년 동안 참 용케도 살아왔다. 미국행은 우리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실감하게 해주고 있으며, 그 사람은 좋은 기회를 제공한 자신에게 별로 감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게 서운할 거고, 나는 미래는 대비하는 마음 없이 현재를 불태우고 있는 그에게 서운한 중이다. 어서 미국으로 가고 싶다. 지금이 가장 힘들고 고단하다. 회사 일을 마무리하며 불확실한 귀국 이후를 생각하는 것도,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과 돈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다 심란하고 힘들다. 시간아 빨리 흘러라. 유신시대인 이곳을 홀가분하게 떠나는 그 순간까지 어서 흘러라.


그 사람이 너무나 신나서 고급차 고를까 봐 지인이 알려준 중고차 링크를 넘기지도 못했다. 소풍 가는 것처럼 들떠 있지만 말고 제발 비자나 어서 확실히 받자구. ㅠ_ㅠ

http://www.carm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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