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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ug 30. 2019

연로한 신입이지만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도 눈치껏 안 하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유트버 JAPAULBO & FRIENDS 의 고양이 '버찌'


고양이가 된 기분이다. 서른일곱이나 먹었는데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잔다. 구직 활동도 열심히 안 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혹은 번개라도 맞고 머리가 비상해져서 공직 시험에 합격을 하는 기적을 맞지 않는 한 어디 가서 여기 다녀요,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는 일자리는 못 잡을 테고. 비숙련 최저임금 노동자로 다시 시장에 뛰어들어 나를 세일즈 하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눈이 감기려고 한다. 아니, 감고 싶다. 그래서일까.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사라는 곳에 다닐 자신이 없다. 어딜 들어가든 신입으로, 이 일을 해야겠다,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어떤 낯선 일터에 툭 하고 던져질 것이다. 나름 별별 꼴을 겪은 탓에 생존 근력은 다져 놨기에 어딜 가든 붙어있기 위해 또 안간힘을 쓸 것이, 벌써부터 지친다. 지쳐.


나는 잠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잠이 부쩍 많아졌다. 잠은커녕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할 것 같은 분노가 치미는 순간에도 잠이 몰려왔다. 이를테면, 상사에게 엄청 깨지고 나서 책상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던 날,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꼭지가 도는 상태에서 졸음이 밀려와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나만큼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 H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나는 툭하면 졸음이 와서 걱정이었다. 예전에는 나도 회사의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해 호소하며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인생에 어떤 목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으나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될 날이 올 거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땐, 나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스트레스받으면 잠은커녕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좀비처럼 전철에서 그루브를 타며 출근을 했었다.


기면증인가 싶어, 검색을 해봤다.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밤에 푹 잤음에도 낮에 잠이 오는 증상을 보면 기면증도 조금 있고 우울증도 있는 것 같다. 혹은 무기력증에 좀 더 가깝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자가진단이다. 현살과 이상의 갭을 좀처럼 좁힐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무기력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증상으로 발현될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나는 그저 잠이 아주 많아졌을 뿐이다. 한심한 인간이 게으르고 나태해지기까지 했다.


직업이 없다는 건 돈을 벌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들을 낳는다. 나의 신체는 노화되고 있고 미래는 없고, 인관관계는 자의 또는 타의적으로 두절하였다. 그러니 병원까지 가서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요즘 세상에 노력 안 하고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어떤 노력을 했으나 열매를 따 먹을 수 없었고, 이상과 자의식만 높아져서는 조금만 더, 더 하다가 수많은 깡통을 찬 이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기 전에 정규 취업을 했다. 작은 소기업이었으나 30대 극초반도 아닌 연로한 고령자를 채용해주시어 고마운 회사였다. 패배감에 쩌들었던 나에게 합격 소식은 그야말로 심폐소생술과 같았다. 잠시나마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많이 기뻤고 행복감을 느꼈다. 나중에야 그곳에 채용된 건 악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악물고 존버 하려다 수습딱지 떼자마자 도망치듯 나왔다. 다시 밖에 나와보니 정규직 물 조금 먹었다고 알바는 못하겠더라. (이제껏 나를 먹여 살린 8할이 알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관련 업계에 들어가는 게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억울했고 분한 마음이었지만 말이다. 2016년, 이 해를 잊을 수가 없다. 인생의 총체적 난관 같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으니까. 너무 암울해서 기억하기도 싫다. 그 회사를 나온 후 안 좋은 일이 생겼고, 그 곳에서 받은 수치심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리기 때문이다. 2016년은 악몽같은 해였다.


다시 인생에 공백이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 후에야 같은 분야로 재취업 같은 걸 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쓸데없이 성실해서 탈이었다. 그 일이 관심이 있든 없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내 몫은 해야 하는 이상한 사명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쓰지 않을 법한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대충 좀 살자’ ‘열심히 살지 말자’


이질적이면서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문장이었다. 이 같은 불성실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간신히 서 있었다. 간신히 버티기만 했다. 물론 저  문장은 문장일 뿐, 책이 현실의 삶에 닿지 않는 것처럼 그저 휘갈겨 쓴 문장이었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예전 회사에서 했던 업무를 주문했다. 결정적으로 그 회사를 관두게 했던 일을 또 맡게 됐다. 면접에 그 업무를 해봤다고 말했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그 회사도 그 일이 누가 맡아 주길 바랬고 마침 이 쪽 물을 조금 먹어본 연로한 등신 하나가 들어왔으니. 그걸 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는 그 직무, 하찮은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겠으나 너무 많이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그 하찮게 보이는 일,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세뇌당한 직무가 업무에 포함되었다. 괴로웠지만 적어도 실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경력이 되는 일도 조금씩 배웠다. 그곳을 다니면서 이전에 그 회사에 채용된 건 정말이지 운이 나빴다는 것이 점차 증명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때처럼 아등바등하지 않고, 뭐든 열심히 하는 나이브한 삼십 대 초반 순둥이 신입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내 몸은 불합리한 상황에 강력하게  반응하였다.


일이 흥미 없고 재미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직무였지만, 먹고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하며, 또 존버 본능이 되살아 나려 했다. 내가 약해진 건지, 정말 예전만큼 내 안에 뭔가 사라진 건지. 기운 내는 게 여간 쉽지 않게 됐다. 어느 주말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입이 뭔가 어색했다. 정확히는 혀의 위치였다. 혀가 입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었다. 내 입이 돌아가 있었다. 증상을 검색해보니, 안면마비 증세, 구안괘사, 혹은 풍일 수도 있다고 한다. 육안상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문제는 발음이 잘 안된다. 일요일 저녁, 연필을 입에 물로 발음 연습을 하고 자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짬밥이 낮은 지라 전화받을 일도 많고, 여기저기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많아서 걱정이 됐다.


월요일에 점심을 먹고 한의원에 다녀왔다. 얼굴에 침을 잔뜩 맞고 삼일 치 비싼 한약도 처방받았다. 바쁜 와중에 다녀왔다. 사무실에서 한약 냄새 풍기면서 먹기가 그래서 화장실에서 한약을 후다닥 들이마시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린 부장님이 나를 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그렇게 아파?,

“아.. 네.., “

“(혀를 쯧쯧 차며) 생각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라는 말을 남기시고 자리를 뜨셨다.


한 달 후 나는 회사를 나왔다. 물론 부장님의 한마디가 그 회사를 나오는데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았다. 그저 그 말이 워낙 인상 깊었던지라 쓰고 싶어 졌다. 잠이 너무 몰려왔다. 졸음이 너무 밀려와서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갈등의 씨앗을 만드는 일, 짬 없는 내게 던져지는 그 일, 티 안 나게 고약한 직무를 안 하기로 했다. 더 있다간 이전 회사에서 겪었던 그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게 정말 두려웠다. 내 자리에 내가 아닌 경력자가 오면 될 일이다. 그 경력자는 그 일을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함정이다.


그곳을 나오면서 나의 스탠스를 정확하게 인지했다. 연로한 신입에게 바라는 것을 연로한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도 눈치껏 못하겠다는 것. 더 이상 직장인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했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애저녂에 망친 인생이다. 내 욕망의 찌꺼기가 남아 기회로 둔갑하여 잠시나마 설렜다. 역시 연로한 신입을 채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나는 그럴듯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다. 백수인 채로 밖에 나다니는 것도 두려워했다. 인생에 공백을 들여놓는 것을 아주 많이 두려워했다. 그 회사를 나온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알바를 하다 계약이 끝나면 쉬고 그렇게 어물쩡하게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경력이 되는 일자리를 구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잠도 여전히 많다. 무기력증에 반은 먹혔버렸으나 며칠 고양이처럼 자고 먹고 지내다 보면 한 일주일은 또 무엇을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알아본다. 어떤 일을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을 해야겠다고 만날 떠들지만 직장에 다니는 건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몇 개월간 무기력하게 지내다 보니 생각이 점점 물러지는데 그 안에도 나름 좋은 점도 있다. 스스로를 묶었던 굴레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볼록 나온 윗배에 관대해졌고, 옷은 만날 단벌신사지만 타인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어짜피 이생망이다. 바로 잡을 수 없는 것을 고민할 시간에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행복해 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쏟아 정성스레 집밥을 만들어 먹기 위해 노력하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한다.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장소는 내 방이다. 이 공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청결하고 정갈하게 유지한다. 그러니 나는 완전 무기력에 패배한 건 아니다. 조금씩 나를 가꾸듯 방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속 썩였던 치아도 발치했고, 이런저런 사소한 것들을 처리하면서 조금씩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2018년 7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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