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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May 21. 2020

적게 먹기

남은 공간에 활력이 채워진다

친구 S와 나는 만나면 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값과 음식값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커피 대신 밥을 한 번 더 먹는 선택을 했다. 언제나 S와 만난 후에는 무거운 배를 부둥켜 앉고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일본인 남자 친구를 두었던 S는 그를 만나기 전에 케이크 한 조각이라도 먹고 나가야 한다며 배고픔에 하소연을 했다. 그의 남자 친구는 소식을 신조로 삶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S가 음식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음식은 위장의 30%는 남겨두고 먹어야 한다’고. 이 이야기는 오래전 일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말도 안 돼!”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최근 들어 나는 이 말이 참 와 닿는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유산균 요구르트를 마셨다. 그리고 전날 동네 빵집에서 사 온 녹색 앙금빵 반절을 뜯어먹었다. 외출을 하기 전에 고추장에 재운 돼지고기로 제육볶음을 만들어 놓았다. 당장 먹을 건 아니지만 재운 지 며칠이 지났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계속 놔두면 음식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냉장고에서 꺼내 데우고 밥 위에 얹히면 그렇듯한 한 끼가 될 것이다.


나는 오전에 도통 입맛이 없다. 깨어나서 서너 시간 정도는 액체류 외에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예전에 밥값을 아껴보고자 억지로 밥을 먹고 나갔던 적이 있다. 속은 든든하지만 꾸역꾸역 졸음이 왔고 능률이 떨어졌다. 게으른 몸을 힘껏 일으켜 카페에 갔는데 졸려서 한 시간도 안돼서 집에 돌아온 적도 많다. 게다가 거북한 뱃속에 음식물을 욱여넣었더니 역류성 식도염까지 생겼다. 식습관이 조금만 엉켜도 위장장애가 잘 생기는 편이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일부러 세끼를 챙겨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방법이 나에게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항상 속이 더 부륵 했다.




위장장애로 병원을 찾았다. 3주 동안 약을 복용했으나 나아지질 않았다. 매주 병원에 가는 것 또한 스트레스가 됐다. 몇 해 전만 해도 1주일치 처방을 받으면 뚜렷하게 호전됐는데 확실히 나이가 들어서인지, 혹은 신경 쓸게 많아져서인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장약은 오래 복용해도 좋지 않다고 한다. 스스로 소화를 시킬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소화가 안 되는 채로 약을 먹지 않으면 더 안 좋다. 정상적으로 소화를 시킬 수 있도록 보조제로서 약은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간다면 본인의 식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매번 쉴 때마다 위장장애를 겪었다. 활동량이 급격히 떨어져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식습관도 문제다. 육류 위주의 음식을 좋아하며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다. 문제는 이제 먹는 대로 몸이 반응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슬프지만 더 이상 내 위장은 젊지 않다. 아무거나 막 먹으면 안 된다. 내가 먹는 게 곧 나인 것이다. 먹는 게 잘못되면 활력도 떨어진다.


식습관을 단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채소를 먹으려 노력한다. 식료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서 요리 대한 서가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내 관심 밖이었던 요리에 대한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음식 에세이를 읽다 보면 건강한 음식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생긴다. 부작용은 책 읽다가 채소를 사러 나가는 경우가 생기는 정도. 최근에는 미나리와 시금치의 참 맛을 알아가고 있다. 고작 두 가지 채소를 추가했을 뿐이데 밥상을 풍성해졌다. 시금치를 데치고 미나리 부친다. 육류를 먹을 때 채소를 꼭 곁들여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우리 집 냉장고 아랫칸에는 항상 푸른 책 채소들로 채워져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점심 후 식곤증으로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인은 밥(쌀) 심이라는 말을 맹신하며 밥을 많이, 그리고 빨리 먹었다. 일을 할 때는 에너지가 필요해서 그렇게 먹어도 전혀 탈이 나지 않았다. 현재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 한 공기의 탄수화물이 되려 활력을 저하시킨다. 최근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채소 먹기와 더불어 탄수화물 줄이기다. 탄수화물을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식곤증이 완화됨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하루에 세끼를 꼭 먹지 않아도 된다. 어떤 책에서는 가끔씩 단식을 하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뭔가를 채워야만 건강해지는 건 아닌 건 같다. 음식량을 줄이면서 남은 공간에 에너지가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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