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먹거리의 역사 속 개고기

먹거리의 역사 속 개고기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뜻하는 말(venison)은 사냥(venery)에서 유래 된 것으로 원래 고기를 연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냥감을 잡기 전에 오랫동안 몰아붙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호르몬에 대해서 알지는 못했지만, 짐승이 느끼는 피로와 공포가 고기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카메론 북부 사람들은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기른다. 사람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개에게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사슬에 매달아 하루 종일 때린다. 숨이 넘어갈 정도까지 심하게 때린 후에야 개를 죽인다. 사람들은 바로 죽여서 구운 개고기와 이렇게 잡은 고기의 즙이 다르다고 한다.  

어릴 적 모래내 남가좌동에 살았다.

모래내에는 하천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여름철만 되면 하천가에서 개잡는 어른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개는 잡기 전에 뭉둥이질을 한다. 개패듯 한다는 말이 개를 도살하기전 뭉둥이질에서 유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개는 인류가 가장 먼저 가축화한 동물이다. 처음에는 사냥에 주로 이용하였고 차차 가축사육에도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석기 시대의 시베리아인들이 처음으로 늑대에서 진화된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 9500년경에 터키의 카요누에서 자칼의 일종인 습지개를 사육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개들은 식용이 아니라 수렵과 감시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렵과 감시용이었던 개를 식용으로도 이용된 걸 알 수 있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범려

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멸하고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한 명신(名臣)이다.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뒤 구천은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

와 문종(文種)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범려

는 구천에 대하여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지만 영화를 함께 누릴 수는 없는 인물이라 판단하여 월나라를 탈출하였다.


제(齊)나라에 은거한 

범려

는 문종을 염려하여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하였으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자결하고 말았다. 이 고사(故事)는 《

사기

(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 보이며, 토사구팽은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이 토사구팽에 나오는 월나라와 구천이 약 BC.520년 ~ BC.465년 사람이니 이미 이 시대에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논어>에 나오는 일화를 통해 볼 때 2,500년 전 춘추시대에 살았던 공자의 식탁에 오른 것은 소반에 차려낸 기장밥이었고 공자는 기장밥을 손으로 집어먹었다. 당시 중국에서의 개고기는 일반적으로 황제의 제사상이나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도 쓰이던 일반적인 고기였으므로 공자도 개고기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신석기시대 양소, 용산 유적지, 우리 나라의 김해 회현동 조개무지 등 신석기 유물에서 개의 뼈가 널리 출토되고 있으며, 고구려 안악 3호분(4세기) 벽화에 도살된 개의 모습이 양, 돼지와 함께 그려져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부여조에 개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다. 그러나 개고기를 일반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사」열전에 의하면 “ 김문비란 자는 항상 개를 구워서 대나무 조각으로 개털 을 긁어내어 버리고 이것을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식용이 더욱 일반화되어 고기 이외에 창자 등을 이용한 음식도 성행 하였다. 『규합총서』(1815년경)에는 개고기의 원리에 대하여 적고 있으며 『부인필 지』,『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음식디미방』,『임원십육지』,『해동농 서』,『고사십이집』등에도 개고기 삶는 법,찌는 법,굽는 법,구장(拘醬)등 우리 나라의 독특한 요리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개고기가 일반화 된 것은 앞에서 설명하듯이 공자도 개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심상규가 성절사로 북경에 간 것은 1812년 청나라 때다. 청나라 사람들은 개고기를 피했다. 중국도 개고기를 제사에 사용하는 등, 상식했다. 청나라 이후, 중국인들은 개고기를 피한다. 이유는 두가지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기마민족이다. 사냥이 주업인 기마민족에게 개는 수렵의 동반자이자 목숨을 지켜주는 동료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지위가 다르다. 남쪽의 광동, 광서성 등에서 지금도 개고기를 먹는 반면 북쪽에서 먹지 않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개가 청 태조 누르하치의 생명을 구했다는 설화 대문이다. 누르하치가 깊은 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개가 불길에서 누르하치를 구했다. 청을 건국한 만주족들이 개를 먹지 않자 중원의 한족들도 따른다. 

개고기를 먹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성격을 달리했던 것 같다.

문제는 인위적 규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 시대적인 트렌드였을지도 모르겠다.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맛있게 먹는 음식에 대해서 먹지 말라고 법으로 정한다는 것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분명 먹기 위해 키우는 개와 애완용으로 키우는 개가 다른 현실이다. 만약 반려견 유기를 아동 유기와 같은 차원의 범죄행위롤 보는 생명존중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아마도 개고기를 먹는 이들이 이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참고문헌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추생-사마 상 까치 p111-112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추생-사마 상 까치 p99-100

 네이버 지식백과]

토사구팽

 [兎死狗烹]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개고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식문화), 2003., 한국콘텐츠진흥원)

 고전에서 길어올린 한식이야기 식사 황광해 하빌리스 p80

매거진의 이전글 개고기를 위한 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