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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설

인류는 고기를 먹는 사유하는 잡식 동물

인류 고기를 먹는 사유하는 잡식 동물    


최초의 인류 아담은 사과만 먹었다. 

뉴욕 타임스는 존 홉킨스 대학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앨런 워커(Alan walker)박사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 이야기는 인간의 식사에서 과일이 차지하는 엄천난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의사와 영양학자들에게는 핵폭탄처럼 경악할 일이었다. 워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우리 인간의 초기 선조들이 주로 먹은 것은 고기가 아니었다. 씨나 새싹, 잎이나 풀도 아니었다. 그들은 잡식주의가도 아니었다. 그들은 주로 과일에 의존해 생존해왔다.” 워커 박사는 치아에 표시된 줄 모양을 연구함으로써 식사성향을 결정하는 놀라운 방법을 발견하였다. 석화된 치아의 연구에서 워커 박사는 “현재까지 어떤 예외도 발견되지 않았다. 1200만년 전의 원시인부터 호모 에렉투스까지 조사된 모든 치아가 과일을 먹은 치아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앨런 워커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의 인류나 호모 엘렉투스때 까지는 인류는 지금의 침팬지처럼 과일을 주로 먹고 약간의 육식을 즐기는 잡식성있었던 것 같다.    


인류의 진화

우선 인류의 진화를 살펴 보자.

지금으로부터 4, 5백만 년 전, 에너지 폭발에 의해 원시 인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후 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등장하였고, 250만 년 전쯤에는 뇌가 점점 커지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호모 하빌리스(Homohabilis: 재간꾼)가 등장했다. 160만 년 전에는 걸어 다니는 호모 에렉투스(Homoerectus: 곧선 사람)가 나타나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국까지 퍼져 나갔다. 50만 년 전에는 베이징 원인이 나타났고, 10만 년 전에는 인류의 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Neanderthal,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인이 유럽과중동에 등장하였다.
 4만~5만 년 전부터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sapiens: 지혜로운 사람)라는 현대적인 인간으로 변모해 갔다. 유럽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 4만 년 전에 크로마뇽(Cro-Magnon)인이 나타나 네안데르탈인과 장기간 공존하였다. 그리고 약 4만 년 전부터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sapienssapiens: 아주 현명한 사람)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호모 하빌리스는 약 150만년에서 200만년전 동아프리카에서 살았는데 주로 식물을 먹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달리 이들은 고기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올두바이 협곡 퇵적물에서 다량 발견된 석기는 호모 하빌리스들이 나무뿌리를 캐거나 단단한 열매를 으쌔고 죽은 동물을 잘랐던 도구로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멸종하고 사라져 버린 반면 호모 하빌리스는 계속 진화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기를 먹으면서 힘이 강해졌고 크고 복잡해진 뇌를 가졌으며 또 두손으로 무기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식 인류의 탄생

이 시기 인류가 살고 있던 아프리카의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숲이 줄어들었고 식물성 먹거리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대개 사자나 표범과 같은 육식 동물은 사냥감의 내장 기관과 쉽게 뜯을 수 있는 살코기만을 먹는다. 그들은 인간과 달리 손이 없어서 뼈에서 살을 정교하게 발라 먹을 수 없었다. 뼈에 붙어 있는 살까지 먹으려 하다가는 이빨을 다치기가 쉬웠다. 육식동물들이 포만감을 느끼고 떠나면 이번에는 하늘에서 온갖 새들이 내려왔다. 새들은 사냥감의 뼈에 남아 있는 살을 날카로운 부리로 발라 먹었다. 그리고 나서 인류는 사냥감의 몸에서 남아 있는 단백질 주로 단단한 뼈속의 뇌와 골수를 먹었다. 뼈와 살을 발라내려면 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호모 하빌리스가 최로로 도구를 만든 이유다. 사냥감의 뇌나 살을 먹으면서 단백질 섭취가 늘어나서 뇌가 커졌다. 인류는 점차 몸집이 커졌다.    

 

최초의 사냥꾼 호모 에렉투

호모 에렉투스는 협동하여 사냥하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후 고기를 먹으면서 살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사냥꾼은 호모 에렉투스였다. 호모 하빌리스는 맹수들이 잡은 사냥감의 남은 부위를 얻어 먹었다면 호모 에렉투스는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이과정에서 인류는 나무나 돌로 창과 도끼를 만들었고 몸에서 털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많은 털은 사냥에 방해가 되었다. 털이 업어서 오래 달려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모든 동물 가운데 인류가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했다. 불은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도 되어 주고 불을 사용하면서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다. 현재 인간이 주식으로 먹는 밀,쌀 같은 음식은 자연 상태로는 소화가 거의 안된다. 식물의 강한 세포벽을 깨지 않으면 그 속의 영향소를 흡수 할 수 없다. 또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으면 여러 세균과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 음식을 가열하면 세균의 영향을 줄여 줄 뿐 아니라 쓉기도 쉽고 소화도 잘된다. 동식물의 세포를 감싸고 있는 벽과 막의 강도가 약해지고 세포안에 존재하는 성분의 결합력이 약해져서 소화가 잘 된다. 불에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치아가 작아지고 창자가 짧아졌으며 소화 시간도 줄었다. 이렇게 신체의 변한 결과 뇌 용량이 커졌고 창자를 유지하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뇌에 투입할 에너지가 늘어나 점차 뇌 용량이 커졌다. 또한 인류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할아버지들로 부터의 대대로 내려오는 삶의 지혜에 대한 학습효과가 커졌다. 호모 엘렉투스는 후두가 발달해서 우우 짖지 않고 간단한 말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었다. 1926년에 중국 베이징 남서쪽 자우카우덴의 석회암 지대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이 호모 에렉투스다.

정리를 해 보면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단계는 인류가 옷을 입고 불을 사용하며 집을 짓고 살게 됨으르써 추운 기후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점 그 덕분에 인류는 열대지방에서 벗어나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사물을 이름짓는 원시 언어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또한 집단적 협동을 이용하여 사냥을 했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10만년 전쯤 등장해서 한때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한 인류인데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다른 인류다. 

이들 역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다.

인류는 약 500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수렵 채집자로 출발했다. 그후 499만년 동안 그런 상태로 살았다. 그러다가 마지막 빙하기가 지난 뒤 날씨가 따뜻해지자 인류가 잡아 먹는 동물들의 숫자가 갈수록 적어졌다. 고고학에서는 인류가 수렵 채집자였던 기간동안을 구석기 시대라 부른다. 기술적으로 볼 때 구석기 시대에는 인류는 깨서 만든 석기 즉 껜석기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중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짧은 과도기가  있었다. 중석기 시대에는 질그릇과 간석기가 발명되고 개가 사육되었다.     


농경, 사육의 시대

육식 동물의 경우에는 대개 먹이가 되는 동물이 줄어들면 포식자의 숫자 역시 줄어 든다. 그러나  사람만은 예외였다. 사름은 다른 어떠한 동물과는 달리 진화의 초기 단계부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주위 환경을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먹이 사슬의 정상에서 그 지위를 유지해왔을 뿐 아니라 착실한 인구 증가율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수확이 적은 시기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용 식량의 저장은 과거 1만년에 걸친 인구의 대증가를 몰고 온 전환점이 되었다. 

고기는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보존이 어렵다. 고기는 금방 상하고 썩은 고기의 독성은 비록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입에 대기 조차 싫어진다. 따라서 고기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냥해서 도살할 수 있는 동물이 없다면 음식을 건조시켜 보존하는 방법보다는 산 채로 저장하는  행태라 할 수 있는 가축이 훨씬 편리하다. 인류가 수렵인에서 농경민으로 바뀌기 시작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동 지방의 고원지대에서 진정한 사육의 시대가 시작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이란등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풍부해서 관개를 하지 않고도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곳이며 각종 동식물의 원형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밀, 귀리, 보리, 소, 양, 염소, 돼지등의 사육이 시작되었다. 중동에서 사육의 개념이 생겨난 후 널리 퍼져 여러 민족들이 각각 사육을 시작했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바나나, 사탕수수, 쌀 여러 종류의 완두콩등을 재배하고 들소,닭, 오리등을 길들였다. 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 감자, 강낭콩, 면화, 담배들이 재배 되었다.    

     

가족의 기원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여성은 식물 생산의 주역이었다. 육아를 맡았으므로 여성은 남성보다 활동성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체격이나 힘에서 약했다. 그래서 원시시대의 오랜 기간동안 남성은 주로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썩은 고기를 찾아 다녔고 여성은 아이를 돌보면서 과일과 씨앗을 줍고 뿌리를 캤다. 최근까지 남아 있는 일부 수렵, 채집 문화권을 보아도 이것은 불변의 분업이다. 그러므로 사육이 시작되었을 때 남성은 가축을 길들이는 역할을 맡았으나 식물 재배를 혁신 시킨 것은 여성이다. 그러나 물건을 나르고 밭을 가는 데 가축의 힘을 이용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가 생겨났다. 남자들은 가축의 사육을 맡으면서 점점 더 큰 가축도 사육하게 되었다. 어느날 가축의 힘을 이용하여 땅을 파면 농사에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았고 쟁기가 출현하면서 가축을 모는 남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여성의 지위는 인류 역사 전체를 걸쳐 대체로 높았는데 동식물을 사육하게 되고 남성이 농사를 맡게 되면서 낮아졌다. 

사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가족의 기원에서 원시시대의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전혀 새로운 사회 관계도 나타났다. .....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 살던 셈족이나 인도의 펀자브 지역과 갠지스 지역 그리고 중앙 아시아의 아무다리야, 시르 다리야 유역에 살던 아리안족은 말, 낙타. 당나귀, 소, 양, 염소, 돼지와 같은 가축을 길렀다. 가축의 수가 어느 정도가 되면 적당히 돌보아주기만 해도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넘칠 정도로 많은 양의 우유와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되자, 그때까지 식량을 구하던 방법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식량을 덛는 중요한 수단이어었던 사냥도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엥겔스는 가축을 돌보는 데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예제도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회의 관습에 따라서 새로운 생계수단으로 등장한 가축은 남성의 소유가 되었다. 가축을 사육하는 것은 사냥감이나 곡물을 비롯한 식량을 손쉽게 구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사육은 부족 공동의 재산이나 개인의 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사회 조직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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