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돼지 사육 이야기: 노동 인민의 지혜와 삶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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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가장 친숙한 가축이자, 중국 전통 십이지신 중 마지막을 차지하는 특별한 동물입니다. 7천여 년 전 허난성 무양현 자호 유적에서 발견된 돼지 머리뼈는 이미 중원(中原)에서 대규모 돼지 사육이 이루어졌음을 알려 줍니다.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돼지는 식량·비료·문화 소재로서 인간과 밀접하게 교감해 왔습니다.
1. 고대의 벼슬 — 상·주 시대의 거세술과 사육법
상(商)·주(周) 왕조 시기, 《역경》과 《예기》에는 돼지를 거세해 성질을 온순하게 하고 살만 찌우는 기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세한 돼지의 이빨은 길다”는 말은 곧 거세한 돼지가 날카로운 본능을 잃고 안전해진다는 뜻이죠. 이 거세술은 고대인들이 돼지 생리와 번식 기능을 이해하고 사육 기술을 혁신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2. 한대(漢代)의 비료 문화와 종돈 선발
한대에는 돼지 분뇨를 밭거름으로 활용하는 지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무덤에서 출토된 돼지우리 토기 모형은 ‘화장실과 연결된 우리’ ‘작업장 옆 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사육장을 보여 줍니다. 방이치(方以智)의 《물리소식》에는 “목이 짧고 털이 무성한 돼지가 좋고, 세 개의 이가 난 돼지는 버려야 한다”는 기록이 있어, 이미 형태·기능별로 품종을 선발해 개량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3. 수·당(隋唐)과 송(宋)대의 산업화
수·당 대에 이르러 대규모 관영 양돈장이 수천 마리 돼지를 사육했으며, 송대에는 소동파(蘇東坡)가 ‘동파육’을 개발해 양념·장시간 찜 요리로 돼지고기의 풍미를 한층 높였습니다. 《동경몽화록》에는 수도 개봉(開封)에 매일 만 마리씩 돼지를 몰아들이는 모습이 기록될 정도로 돼지고기 수요가 폭발했지요.
4. 원(元)·명(明)대의 흥망성쇠
원대에는 호수·습지 지역의 수초를 돼지 사료로 활용해 사양 면에서 혁신을 이뤘습니다. 반면 명대 정덕 연간에는 황제 성(姓)이 ‘주(朱)’와 같다는 이유로 돼지 사육이 금지되어 전국의 돼지가 몰살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민간의 진씨 가문이 종자를 은밀히 보존해, 결국 노동 인민의 생존 본능과 전통이 살았습니다.
5. 청(淸)대 이전의 전파와 쇠퇴
18세기에는 중국산 돼지가 영국·미국으로 수출되어 요크셔·버크셔 등 명품 품종 개발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전쟁·재난·질병이 연이으며 양돈업은 쇠퇴했고, 해방 직전까지 생산 기반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6. 전통에서 배우는 오늘과 내일
수천 년의 돼지 사육사는 단순히 농업 기술의 변천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비료·식문화·품종 개량·방역·전통 민속이 복합된 인문·사회사의 축소판이죠. 오늘날 스마트양돈·친환경 순환농업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고대의 지혜—거세술, 방목·우리 결합, 종돈 선발 원칙—는 여전히 유효한 단서가 됩니다.
결론
인류와 돼지의 관계는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이를 잊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과거의 지혜를 소중히 계승할 때 비로소 풍요로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고대 가축화부터 현대 양돈업까지 돼지 사육의 역사는 결국 인간 공동체의 발전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전통 사육 지식을 연구·확산하여, 돼지고기 산업의 가치를 재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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