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부업농 시대
해방이후 부업농 시대
1943년부터 1945년의 대동아 전쟁중의 축산통계는 불행이도 찾을 수 없으나 전쟁중 물자가 귀했던 것과 1946년 사육두수가 300천두인 통계를 감안해 보면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1625천두와 같은 수준인 1690천두를 1962년에야 겨우 키울 수 있었으면 이후 사육두수는 가격의 등락에 따라 불안전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는 콘호그 사이클이라고 해서 옥수수 가격이 하락하면 돼지를 많이 키워 돼지가 출하될 쯤 돼지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인데 미국에서의 콘호크 사이클은 30개월 주기였으니 우리나라는 사료가격의 영향보다 돼지고기 소비가격 높으면 사육이 급격히 늘어 축하되는 시점에서 가격이 급락하는 호그 사이클이 32개월정도 주기로 반복되었다. 특히 1978년 1718천두의 돼지가 179년 2843천두로 급격히 증가하고 도축두수도 1978년1171천두에서 1716천두로 급격히 늘어서 돈가가 극심한 폭락을 보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한냉, 제일제당, 롯데에 육가공 회사 설립을 강요 1980년대에 본격적인 축육햄이 생산 되기 시작하였다.
1960,70년대의 급격한 가격 불안정성으로 정부는 돈육의 대일 수출을 장려하였으나 이 역시 국내 돈가가 낮을 때만 가능했고 돈가가 상승하고 돼지고기 공급이 모자라면 수출을 통제하였다.
1960,70년대도 도축두수 대비 사육두수가 1:1이 아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돼지는 자가 도축이 성행하였던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