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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삼겹살

근현대100년의 돼지 사육 현황 - 일제 강점기

3. 근현대 100년의 돼지 사육 현황

 일제 강점기 돼지 사육 현황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를 살펴 보면 1909년 조선반도에는 576천두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다. 1909년 도축두수는 115,004두로 도축대비 사육두수를 감안하면  사육두수의 20%만 한해에 도축된 것으로 돼지의 수명이 5년 정도라는 말이 되는데 이는 소 도축은 행정기관에서 상세히 관리하였던 것과는 달리 돼지는 신고나 허가없이 정식 도축장에서 도축된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이나 마을에서 임의 도축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실지 사육두수와 도축두수간의 격차가 심하다.  
1900년대 초에 도입된 개량종은 1916년경부터 출시되기 시작하였으며 1930년에야 본격 출시된다. 
이는  1934년 세겹살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과 같은 시기로 아마도 삼겹살 즉 세겹살은 재래종 돼지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개량종 돼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1914년 도축돼지 366,699두중 개량종은 1.4%에 불과 하였으나 1930년에는 개량종 도축비율이 40.4% 1933년에는 51.7%로 재래돼지보다 급격히 많아져서 1942년에는 전체 도축 돼지중 개량종이 70.2%를 차지 하게 된다. 
사육두수도 1921년 1,010,996두로 백만두를 넘게 사육하였다.
1936년 1,625,091두를 사육한 것이 일제 강점기에 가장 많이 사육한 기록이다.
도축두수도 1910년 86,101두에서 1919년 655,228두로 급격히 늘었다가 1920년 201,733두로 다시 줄어들었다. 이는 1919년이전 일제의  조선반도 통치 전략과 삼일만세 운동이후 일제의 조선반도 통치전략의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강점 초기 전국의 도축장수가 증가하다. 1919년이후 안정적인 숫자를 유지하는 것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1930년 245천두를 도축하였으며 1930년 245천두 ,1935년 444천두, 1940년 349천두,1942년 536천두 도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도축두수가 실제 도축 두수였는지 알수 없고 조선반도에 1300여개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의 숫자만 집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돼지는 도축장에서 도축된 것이외에 자가 도축에 의한 소비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에 도축장이 조선반도에 1300개이상 이었던 것은 그 당시는 냉장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생축을 소비지에서 직접 도축 소비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 도축된 육류는 그 지역내에서 소비된 것으로 봐야 한다.
1923년 경성부영 도축장에서는 전기 도살이 실행되었으면 1923년 기록을 보면 서대문 형무소앞에 도축장이 있고 오백여평의 연못에 피와 똥등 도축페수가 방류되어 악취진동하고 파리가 우글거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25년에 이미 경성부 도축장에서는 탕박도축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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